1932년 권호명의 증손 권보용(權輔容)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수로(金壽老)의 서문, 권말에 족손 권도용(權道溶)의 발문이 있다.
3권 1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29수, 권2에 서(書) 12편, 발(跋) 6편, 행장·묘갈명·묘비명 각 1편, 상량문 2편, 제문 4편, 잡저 7편, 권3에 부록으로 가장(家狀)·묘정명(墓庭銘)·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의 「유봉호록(遊蓬壺錄)」은 여러 사적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가락고도(駕洛古都)와 운수사(雲水寺),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정운(鄭運)의 비각이 있는 몰운대(沒雲臺), 전망구적(戰亡舊蹟)이 있는 부산의 만공단(萬公壇), 족숙 권빈(權斌)이 명명한 겸미정(兼美亭), 임진왜란 때 전사한 장군 정발(鄭撥)의 비가 있는 영가대(永嘉臺), 범어사 등 임진왜란과 관련된 많은 사적지가 소개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있다.
「금구노정기(金溝路程記)」는 증조부 중달(仲達)의 산송 문제로 금구에 정장(呈章)하고 돌아온 기록이다. 「신계서원부표관문정영장(新溪書院付標關文呈營狀)」은 고려 말의 절신(節臣) 박익(朴翊)을 봉향한 신계서원의 향축(香祝)·생폐(牲幣)와 노비 문제를 예조에서 제급(題給)한 대로 시행하도록 본현에 관문을 보내 달라고 감영에 청한 글이다.
「노참봉충의표장정수의장(盧參奉忠義表章呈繡衣狀)」은 임진왜란 때 참봉으로서 큰 공을 세웠으나 상전(賞典)에서 누락된 노주(盧胄)를 국가에서 표창하게 해 달라고 어사에게 올린 글이다. 당시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노흠(盧欽)·배세겸(裵世謙)·정경운(鄭慶雲)의 『고대일기(孤臺日記)』, 조경남(趙慶男)의 『산서일기(山西日記)』 등 제가의 문자를 인용하여 노주의 공적을 증명하였는데, 역시 임진왜란과 관련된 글로 사료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