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주합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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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주합루
창덕궁 주합루
건축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2층 누각 형태의 궁궐건물. 누정. 보물.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2층 누각 형태의 궁궐건물. 누정. 보물.
개설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주합루는 부용지 북쪽에 위치한 2층 누각이다. 부용정과 마주보고 있으며 남문은 어수문(魚水門)이다. 주합(宙合)이란 우주와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자연의 이치에 따라 국가를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

내용

주합루는 1776년(정조 1)에 지어 1층을 규장각, 2층을 주합루라 칭하고 어필로 편액을 달았다. 정조가 지은 규장각지 서문을 보면 이 제도는 송나라의 용도각(龍圖閣), 천장각(天障閣)에서 어서를 보관했던 제도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원래 규장각은 숙종이 종친의 업무를 관장하는 종부시(宗簿寺)에 세운 것으로 왕의 글과 글씨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정조는 규장각의 이름을 계승하여 기능을 크게 확대시켰다. 즉 학문을 연구하면서 임금을 보필하는 국왕 직속의 근시기구로 개편하였다. 주합루에서는 세칭 사검서(四檢書)로 불렸던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이 근무하였다. 주합루에는 정조의 어제, 어필, 어진, 보책, 인장 등을 보관했는데, 정조 12년에는 경쇠와 쇠북을 봉안하였고, 18년에는 사서삼경을 보관했다. 또 순조 7년에는 단종의 역사를 적은 『장릉사보(莊陵史補)』를, 순조 12년에는 세자 익종의 이름을 정하여 봉안했으며, 순조 14년에는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와 사도세자의 문집 『경모궁예제(景慕宮睿製)』를 봉안했다. 순조 27년에는 순조의 어제를, 순조 30년에는 순조의 어진을 봉안했다. 철종 12년에는 철종의 어진을 봉안했다. 이렇듯 역대 임금의 어제, 어필, 어진을 보관했던 주합루는 통감부가 설치된 순조대 이후 일본 관인들의 접대소로 변모되었다. 순종은 1908년 7월 12일 주합루에서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접견했으며, 같은 달 20일에는 부통감이 데려 온 일본 화가를 접대했다고 한다.

주합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익공계 중층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5단의 화계 위에 있다. 1층 규장각의 실내는 가운데 칸을 마루로 하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한 칸씩 두었다. 아궁이는 건물의 후면에 있다. 2층 주합루는 모두 마루방이다. 가구는 고주 사이에는 대들보를 걸고 고주와 평주 사이에는 툇보를 건 평범한 7량가 구조이다. 공포는 이익공으로 기둥 위로 창방만을 짜 돌렸고, 기둥 사이 창방 위로는 화반을 얹었다. 마루 둘레는 계자각 난간을 설치했고 방 안에만 우물천장을 가설했다.

주합루 주변은 화계(花階)에 정원을 꾸며 놓았으며, 화계 첫 단에는 어수문(魚水門)을 두고 주합루에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주합루의 정문인 어수문은 임금을 물에, 신하들은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한 뜻이 담겨져 있다. 어수문으로 임금이, 그 옆 작은 문(협문)으로 신하들이 출입하였다

의의와 평가

주합루는 정조의 정책개발과 개혁정치,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며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 어진, 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또한 건물은 경사진 높은 지형에 배치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으며, 1층은 왕실도서 보관에 적절한 퇴와 사분합 들문을 설치하였고 내부는 온돌을 두었다. 2층 열람실은 사방의 빼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등 건물의 기능에 맞는 실 배분이 충실히 반영되었다. 이처럼 주합루는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창덕궁』(문화재청, 2011)
『조선시대 궁궐용어해설』(문화재청, 2009)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김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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