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고려 말 학자 길재(吉再)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창건되었다.
계류에 걸린 석교를 건너 흥기문을 지나면 우측에 채미정이 있고 좌측에는 구인재(救仁齋)가 있다. 후방에는 길재의 충절에 감격하여 읊은 숙종의 어필 오언구(五言句)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과 비각이 나란히 서 있다.
채미정은 중앙 1칸은 온돌방으로 꾸미고 사방 둘레에 모두 우물마루을 깔아 대청으로 꾸몄다. 온돌방의 사면에는 각각 2분합 들문을 설치하였으며, 대청 사면이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치석한 화강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주상의 2익공은 쇠서[牛舌] 위에 연봉(蓮峰)을 조각하였고, 귀포는 귀한대와 함께 2제공 위에 용두를 두었으며, 주간에는 초각 화반(花盤)을 1개씩 배치하였다.
가구는 5량가로서 퇴량을 양봉이 받았고, 중앙 온돌방의 기둥이 고주인 관계로 퇴량 위에 접시대공을 놓아 외기틀을 받고 있다. 구인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중앙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양측면은 2통칸 온돌방으로 꾸며 전퇴를 둔 초익공의 백골집[白骨家 : 칠을 안 하고 목재면을 그대로 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