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

자연지리
지명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산.
이칭
이칭
수산(水山), 소금강(小金剛)
지명/자연지명
높이
869.7m
소재지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산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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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청량산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위치한 해발 고도 869.7m의 봉우리이다. 풍화, 침식에 매우 강한 중생대 백악기 화산암류로 이루어진 청량산 일대의 산지는 동서 방향의 능선을 따라서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차소봉, 금탑봉 등 암봉과 단애가 매우 잘 발달한 절경을 이룬다. 청량산 능선의 남쪽 산록에는 청량사가, 청량산의 남쪽 건너편 산지에는 청량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청량산 일대는 1982년에 청량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의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산.
개설

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 위치한 해발 고도 869.7m의 봉우리이다. 청량산을 중심으로 한 동서 방향의 능선에는 급경사의 암봉과 주1가 잘 발달하고 있으며, 청량산의 남동쪽 산록에는 청량사가, 청량산의 남쪽 건너편 산지에는 청량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명칭 유래

청량산은 과거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렸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청량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산세가 수려하여 소금강(小金剛)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고봉인 장인봉(丈人峰)을 비롯하여 외장인봉(外丈人峰), 선학봉(仙鶴峰), 축융봉(祝融峰), 경일봉(擎日峰), 금탑봉(金塔峰), 자란봉(紫鸞峰), 자소봉(紫宵峰), 연적봉(硯滴峰), 연화봉(蓮花峰), 탁필봉(卓筆峰), 향로봉(香爐峰) 등 12개의 암봉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금탑봉 오른쪽의 절벽인 어풍대(御風臺)가 가장 뛰어난 절경으로 꼽힌다. 조선 시대의 이중환(李重煥)은 『택리지』 복거총론(卜居總論) 산수도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안동 청량산은 태백산맥이 들에 내렸다가 예안(禮安) 강가에서 우뚝하게 맺힌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 만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가 없다.”

자연환경

청량산 일대의 지질은 주2 주3 신라층군의 청량산층함화산암류층이다. 청량산을 이루고 있는 이 화산암류는 주변 지역의 기반암인 백악기 신라층군의 가송동층과 도계동층의 퇴적암류에 비해 풍화주4 작용에 매우 강한 암석이다. 이러한 암석 특성으로 인해, 청량산 일대는 오랜 기간의 풍화, 침식 작용을 버티고 남겨진 기반암이 고도가 높고 경사가 급한 암봉과 단애를 이루고 있어서, 전형적인 석산(돌산)의 지형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청량산의 남쪽과 북쪽으로는 2열의 서북서-동북동 방향 단층선이 발달해 있어, 단층선을 따라 길고 좁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질 구조로 인해 청량산 일대는 서북서-동남동 방향의 능선을 이루고 있으며, 능선 가장 서쪽에 최고봉인 청량산(장인봉)이 위치하고 있고 동쪽으로 가면서 선학봉, 자란봉,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차소봉, 금탑봉 등 암석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연속적으로 발달해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화산암류가 지층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지질 특성으로 인해 청량산 일대의 산지 사면은 계단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풍화, 침식에 강한 경암층은 급경사의 단애를 이루고, 풍화, 침식에 약한 연암층의 표면은 주9을 이루기 때문이다. 한편, 청량산의 서쪽에는 낙동강이 감입 주5로 불리는 깊고 좁으며 구불구불한 하곡을 형성하며 남쪽으로 흐르고 있다.

변천 및 현황

청량산에는 27개의 절과 주6주7가 있고, 신라시대 이후 선현들이 수도한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원효(元曉)가 건립하였다고 하는 내청량사(內淸凉寺)와 외청량사(外淸凉寺),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유리보전(琉璃寶典), 신라시대의 명필 김생(金生)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金生窟), 최치원(崔致遠)이 수도한 고운대(孤雲臺)와 독서대(讀書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은신한 곳으로 유명한 오마대(五馬臺)와 공민왕당(恭愍王堂) 등이 있다. 이황(李滉)은 도산서원을 근거로 하여 후학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하다가 수시로 청량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는 청량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 산을 매우 사랑하여 이 산에 관한 51편의 시를 남겼고, 「청량산록발(淸凉山錄跋)」이라는 글도 썼으며, 또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도 하였다. 이황이 거처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후인들이 기념으로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는 지금도 남아 있다.

청량산 탁필봉의 남쪽 산록에는 청량사가 자리잡고 있다. 청량사는 663년(신라 문무왕 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그리고 청량산 능선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금탑봉의 남쪽 아래에는 웅진전이 자리잡고 있는데, 청량사가 내청량이라면 응진전은 외청량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이다.

청량산의 남쪽 골짜기 건너편 산지에는 청량산성이 있다. 청량산성은 공민왕 16년(1361)에 쌓은 산성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공민왕이 청량산성을 쌓고 1년간 숨어 지냈던 곳으로 전해진다. 선조 28년에 관찰사 이권일이 봉화군수에게 명하여 산성을 크게 개축했다고 전해진다.

청량산 일대는 1982년 8월 20일 청량산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도립공원 면적은 48.76㎢이며, 청량산 12봉 및 12대(臺), 청량산 8굴 및 4우물, 청량사, 청량산성, 청량사 유리보전, 어풍대(御風臺) 등이 주요 관광 자원이다. 또한 2008년에는 봉화군에서 선학봉과 자란봉 사이의 깊이 50m 협곡 위에 길이 90m의 주8를 건설하였다. 고공에 매달린 이 구름다리는 ‘하늘다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현재는 청량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중환, 『택리지』 (을유문화사, 1972)
『신증동국여지승람』

인터넷 자료

청량산 도립공원(https://www.bonghwa.go.kr/open.content/mt/)
두산백과 두피디아(https://www.doopedia.co.kr/)
디지털 안동문화대전(http://andong,www.grandculture.net)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오빅데이터 오픈플랫폼(https://data.kigam.re.kr/map/)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https://map.ngii.go.kr/mn/mainPage.do)
주석
주1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 우리말샘

주2

지질 시대의 구분에서 고생대와 신생대 사이의 시기. 지금부터 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이다. 겉씨식물이 번성하였고,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를 비롯하여 양서류ㆍ암모나이트 따위가 번성하였다.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로 다시 나뉜다. 우리말샘

주3

중생대를 3기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지질 시대. 약 1억 4,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우리말샘

주4

비, 하천, 빙하, 바람 따위의 자연 현상이 지표를 깎는 일. 우리말샘

주5

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 우리말샘

주6

큰 절에 딸린 작은 절. 우리말샘

주7

예전에 건물 따위가 있었거나 사건이 일어나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는 자리. 우리말샘

주8

양쪽 언덕에 줄이나 쇠사슬을 건너지르고, 거기에 의지하여 매달아 놓은 다리. 우리말샘

주9

기울기가 가파르지 않은 면.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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