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화산이란 지명은 본래 춘양면 서동리에 있던 람화사(覽華寺)를 서기 676년(신라 30대 문무왕 16년)경에 원효대사가 이곳으로 이전하고 람화사를 생각한다 하여 각화산이라 명명한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람화사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3층 석탑이 있는 춘양중학교 자리에 있던 절이다.
봉화군 북부의 백두대간 능선에서 남쪽으로 뻗은 작은 지맥에 위치한 산이며, 남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주1과 함께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를 남-북 및 북서-남동 방향의 능선으로 이루고 있다. 각화산을 중심으로 한 능선 서쪽의 유역에서는 구룡산에서 주2 운곡천이 남류하면서 춘양면, 법전면을 지나 명호면 도천리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가며, 능선 동쪽의 유역에서는 현동천이 남동류하여 소천면 현동리에서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각화산 일대의 봉우리와 능선은 해발고도 1,000m 내외에 이르는 비교적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경사와 기복도 대체로 급하거나 큰 편이다. 그러나 각화산 일대에서는 기반암의 특성상 주3이나 돌서렁과 같이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형 경관은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지표면의 거의 대부분이 흙으로 덮여 있고 식생이 우거진 전형적인 토산(흙산)의 지형 경관을 이루고 있다.
각화산 정상부 일대의 지질은 선캄브리아 주4 율리층군의 각화사층으로 불리는 변성 주5인 주6과 주7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화산 주변 북부와 동부의 산지는 퇴적 주8인 편암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율리층군의 고선리층이 분포하고 있으며, 서부와 남부의 산지는 중생대 주9 춘양 화강암이 분포하고 있다. 변성암 중에서도 변성 정도가 낮은 편암은 변성 정도가 높은 편마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화, 침식 작용에 약하므로 지표에서는 기반암이 쉽게 부수어지거나 분해되어 주10과 토양으로 이루어진 풍화층이 상대적으로 잘 발달해 있다. 봉우리 주변의 사면에서는 암설이나 토양이 중력과 빗물에 의해 사면 아래로 운반되어 쌓인 붕적층이 두껍게 발달하고 있다.
각화산의 남쪽 산록에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인 각화사(覺華寺)가 있다. 「봉화군태백산각화사중건기」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661~681)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198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각화사 귀부(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안내 표지판에는 686년(신문왕 6)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고려 예종 때 국사 무애(無礙) 계응(戒膺)이 중건하였다. 그 뒤 여러 차례의 주12 및 주13를 거쳐, 1606년(선조 39) 주14 중의 하나인 이곳에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를 건립하여 왕조실록을 수호하게 한 뒤 8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 사찰의 하나가 되었다.
각화산 정상으로부터 남동쪽으로 480m 떨어진 사면에는 태백산사고지(사적, 1991년 지정)가 있는데, 태백산사고지는 한양의 춘추관 및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史庫)와 더불어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1606년에 건립하여 왜정 시대인 1913년까지 약 300여년 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다. 건물은 해방 이후 원인 모를 불로 완전히 타버렸다.
주요 등산 코스는 각화사 · 헬기장 · 왕두산 · 각화산 · 황장목 군락지를 거쳐 다시 각화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교통은 중앙고속도로 영주 IC에서 영주, 봉화를 거쳐 36번 국도(울진 방향)를 이용하여, 법전 · 춘양삼거리 · 춘양 · 석현리 각화사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