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화산의 높이는 1,177m로, 구령산(九靈山)·조록암봉·청옥산(靑玉山)·옥석산(玉石山) 등과 함께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으로 갈라지는 기점을 이룬다.
각화산이란 지명은, 본래 춘양면 서동리의 1963년 보물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는 춘양중학교 자리에 있던 람화사(覽華寺)를 서기 676년(신라 30대 문무왕 16년)경에 원효대사가 이곳으로 이전하고 람화사를 생각한다 하여 각화산이라 명명한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산의 남동에 왕두산(王頭山, 1,044m)이, 북쪽에 무명산(無名山, 1,172m)이 있어서 면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쪽의 사면은 현동천(縣洞川)의 상류를 형성하며, 남쪽 사면은 자하천의 지류에 의하여 침식을 받고 있다.
태백산 자락이면서도 꽤 터가 넓은 지역으로 산세가 중후하고 모난 데가 없는 육산의 풍모를 보이며, 천 미터급 산들이 즐비한 각화산과 왕두산 일대는 계곡이 깊고, 수량이 풍부해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나무가 우거져 있어 여름철에는 계곡의 아름다움과 삼림욕을 즐기려는 피서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지질구조는 선캄브리아기에 속하는 편암(片岩)으로 된 각화사층(覺華寺層)으로 되어 있고, 산꼭대기는 고선리층(古善里層)으로 되어 있다.
각화산의 남쪽 산록에는 신라 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각화사(覺華寺)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까지는 각화사에 국조사고(國朝史庫)가 있어 사료를 보관하였다.
각화사 아래에는 태백산 사고지(사적, 1991년 지정)가 있는데, 태백산 사고지는 한야의 춘추관 및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史庫)와 더불어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1606년에 건립하여 왜정시대인 1913년까지 약 300여년 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성제대학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 중이다. 건물은 해방 이후 원인 모를 불로 완전히 타버렸다.
주요 등산코스는 각화사·헬기장·왕두산·각화산·황장목군락지를 거쳐 다시 각화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교통은 중앙고속도로 영주 IC에서 영주, 봉화를 거쳐 36번국도(울진 방향)를 이용하여, 법전·춘양삼거리·춘양·석현리 각화사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