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매 인오(靑梅印悟, 1548~1623)의 법호를 따서 그의 법맥을 이은 문파를 청매문이라고 하였다.
제자로는 벽운 쌍운(碧雲雙運), 호감 혜일(灝鑑慧日), 백월 담의(白月湛義) 등이 있으며, 쌍운 이후로 무영 탄헌(無影坦憲)-쌍명 현응(雙明玄應)-취봉 해영(翠峯海瀛)으로 법맥이 이어졌다.
인오는 묘향산에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허 휴정(淸虛休靜)의 뜻에 따라 의승장으로 활동했다. 임진왜란 후 전라도 부안의 변산에 암자를 지어 머물렀고 지리산 연곡사(鷰谷寺)로 옮겨서 주1 입적했다.
벽계 정심(碧溪淨心), 벽송 지엄(碧松智嚴), 부용 영관(芙蓉靈觀), 청허 휴정 등 법맥상의 조사(祖師)들에 대한 제문을 지었다.
시문집으로 『청매집(靑梅集)』을 남겼는데, 전쟁의 참상을 통탄하는 글도 수록되어
사형(詞兄)주2인 사명 유정(四溟惟政)을 기리는 글에서도 “대사는 전쟁의 참화를 가슴 아파하며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 칼에 기댔습니다. …… 인(仁)으로 중생을 사랑함은 바른 선비가 한 시대를 구하는 지략과 같고 의(義)로써 임금에 충성함은 사직을 안정시키는 공신의 정성에 부끄럽지 않습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청허계의 소수 문파이지만 청매문의 조사 청매 인오는 휴정의 주요 제자였으며 역대 조사들을 주3 계승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