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 때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수홍(鄭守弘) · 정곤(鄭坤) · 박동현(朴東顯) · 박동립(朴東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구이면 학천리에 학천사(鶴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현 소재지에 청하서원을 창건하고 박동립과 박동현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함과 동시에 유조(柳組)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이듬해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왔다.
그 뒤 1966년 복원과 동시에 김장생(金長生)을 주벽(主壁)으로 추가 봉안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내신문(內神門), 3칸의 강당, 고사(雇舍), 홍살문〔紅箭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김장생 · 박동립 · 유조 · 박동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고사는 서원관리자가 거처하는 곳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월 3월 초정(初丁 : 첫 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유물로는『전북지(全北誌)』 4책 등 100여 종의 문헌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대지 1,000여 평, 전답 3,000여 평, 임야 100정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