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신천 출생. 호는 어천(魚川)으로, 뒤에 어천(箊泉)이라 고쳐 썼다. 당호(堂號)는 패엽재(貝葉齋)·아사재(我思齋). 어려서 할아버지로부터 글씨를 배우기 시작하여 당나라 유공권(柳公權)의 해서를 익혔다 한다.
광복 이후 서울에 올라와 서예를 연구하면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예부문에 출품하여 1·2회 때에 입선하였고, 3·4회 때에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뒤 1960·1970년대에는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사숙(私塾)인 어천묵림회(箊泉墨林會)를 통하여 후학을 가르쳤고, 동국대학교에서 다년간 서예를 지도하였다. 글씨는 각체를 두루 하였는데, 해서·행서·초서가 뛰어났다.
해서는 초당삼가(初唐三家)를 바탕으로 북위서(北魏書)를 가미하였고, 행서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敍)」 등 제가(諸家)의 글씨를 고루 썼다. 특히, 초서는 그의 특장(特長)이다.
당나라 손과정(孫過庭)의 『서보(書譜)』를 깊이 연구하여 주경(遒勁)한 서풍을 이루었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절정기의 작품을 내놓았으나, 만년에는 병으로 인하여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