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때 순절한 평안병사(平安兵使) 남이흥(南以興) 및 그 수하 장수들을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1681년(숙종 7)에 국가의 특명에 의하여 평안남도 안주(安州)에 세웠으며, 이듬해에 충민사라고 사액되었다.
1627년(인조 5) 후금(後金 : 뒤의 淸)이 침입하자, 당시 평안병사였던 남이흥은 인근 수령들을 규합하여 안주에서 이를 저지하다가 전몰하였다.
제향인물을 보면, 남이흥을 주벽(主壁)으로 모시고 수하 장수인 평안우후(平安虞候) 박명룡(朴命龍), 안주목사 김준(金浚, 또는 俊)을 병향(並享)하였다. 강계부사 이상안(李尙安), 구성부사(龜城府使) 전상의(全尙毅)ㆍ이희건(李希建), 영유현령(永柔縣令) 송도남(宋圖南)은 서무(西廡)에 배향하였다.
그리고 개천군수(介川郡守) 장돈(張暾), 태천현감(泰川縣監) 김양언(金良彦), 맹산현감(孟山縣監) 송덕영(宋德榮), 훈련봉사(訓鍊奉事) 김언춘(金彦春)은 동무(東廡)에 배향하였다.
충절을 표창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건립했으므로 1871년(고종 8) 대원군에 의한 서원철폐 때에도 그 훼철 대상에서 제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