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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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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승정원에서 중국 사신의 접대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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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승정원에서 중국 사신의 접대와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내용

1723년(경종 3)부터 1890년(고종 27) 사이의 기록이다. 19책. 필사본. 사신 행렬이 있을 때마다 1책씩 기록했는데, 날짜별로 좌목과 접대 내용을 기록하였다. 좌목에는 도승지·좌우승지·좌우부승지·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의 관직명과 성명을 기재하였다.

기록할 만한 사항이나 보고할 사항이 없는 경우에는 날짜와 좌목만을 적거나, 좌목 밑에 ‘영접도감초기무(迎接都監草記無)’·‘무장달(無狀達)’·‘무장계(無狀啓)’ 등으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수록된 내용은 주로 칙사가 국내에 도착해 본국으로 돌아가기까지의 동태에 대한 원접사(遠接使)·의주영위사(義州迎慰使)·반송사(伴送使) 등의 관원 및 평안감사·의주부윤 등 지방관이 승정원에 보고한 사항, 승정원에서 영접도감이나 위의 관리에게 지시한 내용, 여기에 대한 이들의 보고 내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雜戲)·다담(茶啖)·노정기(路程記)·통관(通官) 등의 구청미염(求請米鹽)의 수량을 구체적으로 기록했고, 군위군(軍威軍)의 차정에 관한 기록도 있다.

책별 수록대상 시기는 다음과 같다. 제1책은 1723년(경종 3) 1∼2월의 기록으로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뒤섞여 있다. 제2책은 같은 해 10월의 기록인데, ≪포청등록 捕廳謄錄≫ 1702년(숙종 28) 8월의 기록 1장이 첨부되어 있다.

제3책은 1724년 1∼3월, 제4책은 1729년(영조 5) 4∼6월, 제5책은 1731년 3∼5월, 제6책은 1736년 3월과 1739년 10월, 1752년(영조 28) 12월, 제7책은 1748년 6∼7월, 제8책은 1749년 5∼7월, 제9책은 1750년 9∼11월, 제10책은 1755년 7∼9월, 제11책은 1762년(영조 38) 11∼12월의 기록이다.

제12책은 1763년 8∼9월과 1757년 4∼7월, 제13책은 1800년(정조 24) 10∼12월, 제14책은 1845년(헌종 11) 1∼12월, 제15책은 1861년(철종 12) 8∼12월과 1862년 1월, 제16책은 1864년(고종 1) 4∼9월, 제17책은 1875년 8월, 제18책은 1878년 10∼12월, 제19책은 1890년(고종 27) 9∼10월의 기록이다.

이 중 제14책은 통신사 및 차왜(差倭)에 관한 동래부사의 보고 내용이 기록되었는데, 기록은 간간이 있을 뿐 날짜만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 후기 18∼19세기 중국사신의 활동과 조선의 이들에 대한 대우 등을 비롯한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규장각도서와 장서각도서에 있다. 규장각본은 승정원에서 편찬한 정본(正本)이고, 장서각본은 1929년이왕직(李王職)에서 필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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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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