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통칭되며, 경상우도수군절도사가 겸임하여 통제사·통수(統帥)·통곤(統閫) 등으로도 불리었다. 유래는 조선 초기의 수군절도사에서 비롯되었으며, 임진왜란 중인 1593년(선조 26)이순신(李舜臣)이 경상·전라·충청도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되면서 시초가 되었다.
통제영(統制營)은 고성에 두었고 경상우수사가 겸임하였으며, 삼남 수군을 통할하는 해상 방어의 총수(摠帥)로서 지방 병권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임용 절차는 여러 당상(堂上)의 추천을 받은 3인의 후보를 국왕에게 추천해 올리면 그 중에서 1인을 낙점(落點)해 임용했다.
때로는 임용만 될 뿐 실제로 부임하지도 못한 채 체임(遞任)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조선 후기의 정국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기는 대개 2년으로 관하의 수사(水使)나 수령(守令)과는 엄격한 상피제(相避制)가 적용되었다.
특별히 재임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중앙군문(中央軍門)인 오군영(五軍營)의 대장으로 이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통제사직은 무반 최고위직에 올라가는 관문으로 인식되었다. 대우는 매월 16곡(斛) 5두(斗)의 비교적 낮은 녹봉이었다.
그러나 통영곡(統營穀)·통영둔(統營屯) 등 관수비(官需費) 등이 있어서 통제영의 재정 운용 범위가 넓었던만큼 남용의 소지가 없지 않았다.
통제사의 직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수군 운영이었는데, 수군의 훈련은 양남(兩南) 또는 삼남 수군의 합동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춘조(春操 : 봄에 실시하는 훈련)와 각 수영별로 행해지는 추조(秋操 : 가을에 실시하는 훈련)가 있었다. 그 밖에 민정(民政)으로 송정(松政)을 중하게 여겼다.
특히, 직무상 경상감사와는 대등한 입장에 있었으며, 군무(軍務)상으로는 보완과 대치적인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