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다포식의 맞배지붕건물이다. 파계사는 804년(신라 애장왕 5)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5년(선조 38) 계관법사(戒寬法師)가 중창하고, 1695년(숙종 21) 현응대사(玄應大師)가 다시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통전은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는데 1977년 6월 개금불사 때 복장(腹藏)에서 영조의 어의(御衣)가 나왔다. 건물 구조는 가구식 기단 위에 막돌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는데,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에는 귀솟음이 있다. 가구는 1고주 5량가이며, 고주 사이에는 토벽을 치고 그 앞에 불단을 설치하였다. 불단은 영천 은해사 백흥암(百興庵)의 수미단(須彌壇)과 같은 형태로 정교하게 초각하였으며, 상부에는 보개를 설치하여 장엄하였다.
공포(栱包)는 주간포를 2기씩 놓아 내외 2출목으로 하였고, 살미첨차의 단아한 초각수법과 마구리가 직절된 앙서[仰舌]는 균제미를 더해주고 있다. 천장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원통전 앞 기단 아래에는 좌우 양쪽에 괘불대와 석등을 배설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입면의 절제된 균형미와 가구의 치목수법이 조선 중기 다포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