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양오당고택은 조선 후기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류만하가 세운 주택이다. 이 집은 충효당의 남측에 있는 고택으로 류만하가 충효당에서 분가하여 지은 주택으로 이후 주일재 류후장이 증축했다. 이 집은 ㅁ자형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가 남향을 하고 있고, 좌우에 광채와 협문간채가 있고, 안채 정면에 ㅡ자형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어 튼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중문간 앞 바깥마당에는 내외벽을 쌓아 외부 시선을 차단케 했다. 사당은 안채 동측에서 동남향을 하고 있고, 화장실은 바깥마당 남동측 담장 앞에 있다.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고택(安東 河回마을 養吾堂古宅)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하회마을에 있는 충효당(忠孝堂)의 남측에 있는 살림집이다. 이 고택은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증손자 류만하(柳萬河, 16241711)가 충효당에서 분가하여 지은 살림집인데, 이후 류만하의 둘째 아들 주일재(主一齋) 류후장(柳後章, 1650~1706)이 증축(增築)하여 주일재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이 고택의 당호(堂號)인 양오당은 류후장의 후손인 류겸조(柳謙祚)가 지었으며, 강산 원림(園林)이 수려한 곳에 기거하면서 천지에서 얻는 기운이 내 몸에 충만하도록 나를 기른다는 뜻이 있다. 양오당은 하회 마을 남촌 지역의 서쪽 측면에 터를 잡고 남향을 하고 있는데, 접근할 때는 마을 중심의 안길에서 남측으로 난 안길을 이용한다.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고택은 조선 후기 류만하가 건립하여 아들 주일재 류후장이 증축한 후, 1979년 1월 26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양오당은 1979년에 문간채의 번와(翻瓦) 및 벽체를 보수하였고, 1980년에는 사당을 보수하였다. 이 고택은 2001년 안채의 부엌을 증개축하였다. 또한 고택은 2003년 담장 및 주변 시설을 정비하였으며, 2010년에 사랑채와 중문간채, 방앗간채, 협문간채, 사당을 해체하여 보수하였다.
양오당은 사면에 담장을 두르고 있는데, 서측과 북측은 이웃집을 면하고 있다. 남측과 동측은 마을 안길이 지나고 있는데, 현재 출입은 양오당의 남측 안길을 따라 축조한 담장에 별도 대문 없이 트인 담장 사이를 이용한다. 고택은 중문간 앞 바깥마당에 내외담을 조성하여 외부 시선을 막도록 하였다. 이 내외담은 출입을 동측 길에서 남측 길로 옮기면서 축조한 것인데, 동측에 대문과 행랑채가 있었다고 한다. 충효당을 면(面)한 담장에는 충효당으로 출입할 수 있는 협문(夾門)이 있었다고 한다.
양오당은 ㅁ자형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가 남향을 하고 있고, 좌우에 광채(방앗간채)와 협문간채(아래채)가 있고, 안채 정면에 ㅡ자형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어 튼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건물 사이에는 토석 담을 쌓아 안마당을 감싸도록 하였고, 안채 뒤쪽에도 안채와 연결된 담장을 좌우에 쌓고 장독대를 꾸며 여성 전용의 외부 공간을 마련하였다. 사당은 안채 동측에서 동남을 향하고 있고, 화장실은 바깥마당 남동측 담장 앞에 있다.
안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 규모인데, 서쪽부터 근래에 증축한 욕실간, 입식으로 개조한 부엌간, 안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안방과 대청 정면에는 툇마루를 꾸며 놓았고, 건넌방은 정면과 우측 기단에는 쪽마루를 꾸며 놓았다. 자연석 위의 기둥은 사각형인데, 사각기둥 상부는 보아지, 보, 납도리를 이용하여 민도리 방식으로 짜여 있다. 가구(架構)는 5량(五樑)이고, 지붕은 한식 기와를 올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랑채와 중문간채는 一자형의 일렬로 연결되어 있는데, 중문간채가 서측에 있고 사랑채가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중대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서측부터 대문간방(大門間房), 고방(庫房, 광), 중대문간(中大門間) 순이고, 이어서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각 2간 규모의 사랑방과 대청이 있다. 중문간채의 대문간방은 원래 디딜방아가 있었다. 사랑 대청은 전면만 개방하고, 나머지 삼면을 토벽(土壁)에 두 짝 판장문을 달아 마감하였다. 사랑방은 대청쪽에 삼분합(三分閤) 들어열개문을 달아 공간 이용의 효율성을 높였다. 대청 중앙 앞뒤에만 원주(圓柱)를 세우고 나머지에는 방주(方柱)를 세웠으며, 기둥의 상부는 보아지를 끼운 민도리 방식으로 짜였다. 가구 3량(三樑)이고, 지붕은 한식 기와를 올린 홑처마 맞배지붕인데, 중문간채의 용마루가 사랑채의 용마루보다 낮게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인데, 좌우측 벽면의 중방(中房)과 하방(下房) 사이를 와편 화방벽 쌓기 방식으로 마감하였고, 하방의 아래는 돌과 흙을 이겨 마감하였다. 기둥은 사각기둥이며, 기둥 상부는 보아지, 보머리, 장혀, 굴도리를 민도리 방식으로 짜 맞춤을 하였다. 가구는 3량 가구이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협문간채는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북측에 온돌방이 있고, 남측에 대문간이 있다. 온돌방은 연로한 안주인이 사용하였고, 대문간은 주로 안채의 여성들이 출입할 때 사용하였다. 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2간 규모의 창고와 1간 규모의 방앗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고는 바닥이 우물마루 구조이고, 방앗간은 맨바닥으로 디딜방아가 내부에 있다. 이 두 건물의 기둥은 사각기둥이고, 상부는 보와 납도리가 민도리 방식으로 짜임새가 되어 있다. 가구는 3량이고, 지붕은 홑처마 우진각지붕인데, 협문간채는 한식기와 지붕이고, 방앗간채는 초가지붕이다.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고택은 기존 경상북도 지역의 조선시대 반가(班家)처럼 ㅁ자형 뜰집 구조로 배치하지 않고, 반가를 구성하는 기본채의 분리와 연결을 통해 배치의 변화, 담장을 외부와의 경계부뿐만 아니라 외부 시선을 고려한 별도 담장 축조 등으로 보아 조선시대 반가 및 주생활 문화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