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후조당종택(安東 後彫堂宗宅)은 현재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 종택이며, 후조당은 종택의 별당(別堂)이다. 후조당은 광산 김씨 예안파 김부필(金富弼, 1516~1577)이 조선 선조(宣祖) 때 안동시 예안면 오천동에 건립한 것을 현 위치로 옮겨 세운 것이다. 김부필은 본관이 광산(光山), 자가 신중(愼仲), 호가 후조당이다. 이후 김부필은 시호로 문순(文純)을 받았으며, 1822년(순조 22)에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추증되었고, 예안의 낙천사(洛川祠)에 위패가 봉안되었다. 후조당이 있는 오천리 군자마을은 안동 시내에서 도산 방향으로 난 도로에서 동측으로 새로 조성된 마을 길을 따라 접근하며, 안동댐 물가의 남측과 남서측으로 경사진 산 중턱에 후조당과 중건한 종택의 정침(正寢)과 누정(樓亭), 신축한 건물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안동 후조당종택은 원래 낙동강에 인접한 구 예안면 오천동에 있었는데, 1972년 안동댐 건설로 후조당과 사당 등은 현 위치로 옮겨 지었고, 1974년 현재 터로 옮기면서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다. 이후 후조당은 1991년 8월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대청에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직접 쓴 편액 ‘후조당(後彫堂)’이 걸려 있다. 종택은 1974년 보수하면서 대청 합각부 아래 천정에서 발견되어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교지(敎旨)와 「퇴계유묵(退溪遺墨)」, 『향병일기(鄕兵日記)』, 『전가보첩(傳家寶帖)』 등 4종 6점 이외 다양한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종택 정침의 안채와 사랑채는 이건(移建) 이후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마을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 탁청정(濯淸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탁청정 종가와 광산 김씨 재사(光山金氏齋舍) 및 사당, 침락정(枕洛亭) 등이 있다.
안동 후조당종택은 이건하면서 새로 조성한 마을의 북측 산 중턱에 터를 잡고 남서향을 하고 있다. 종택의 안채와 사랑채는 후조당 우측 담장 안에 있고, 사이에 사주문(四柱門)을 세워 통하도록 하였다. 후조당은 정면 담장 동측에 사주문을 세워 외부에서 출입하도록 하였고, 서측에 사주문의 신문(神門)을 세워 사당과 통하도록 하였다. 후조당은 평면이 ㄱ자형인데,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一자형에 2칸이 정면으로 도출한 형태이다. 실은 서측에 6간 규모의 대청과 동측에 2간 규모의 온돌방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고, 온돌방 정면으로 각 1간 규모 마루와 온돌방이 있다. 대청은 6간 대청으로 온돌방 쪽을 제외한 삼면에 분합문(分閤門)을 달고, 기단 위에 쪽마루를 두르고 있다. 정면으로 돌출한 온돌방도 지형의 경사를 이용하여 삼면에 쪽마루를 두르고 하부에 초각한 판재 위에 소로를 얹어 누각 하부 장식처럼 꾸몄다. 대청과 대청에 면한 온돌방의 일부 창문은 영쌍창 구조이며, 온돌방의 창호는 인방재 없이 연귀맞춤을 한 문선만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자연석 기단이고 기단 위 자연석 위 사각기둥을 세워 상부 하중을 전달하는데, 기둥 상부는 내외부를 초각한 보아지를 끼워 대량을 받도록 한 납도리 방식으로 결구되어 있다. 도리받침장혀 밑에 초각한 첨차(檐遮)를 끼워 보아지와 결구하도록 하였다. 가구는 오량가구(五樑架構)이며, 종량(宗樑) 위 파련대공(波蓮臺工)에 첨차형(檐遮形) 부재를 끼운 종도리와 장혀를 받게 하였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이다.
후조당은 종택에 딸린 ㄱ자형의 별당으로 넓은 대청과 온돌방으로 구성하고, 별도의 독립된 마루와 방의 실 배치가 일반 반가(班家)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평면 구성이다. 후조당은 기둥 상부의 민도리 방식과 대공(臺工)의 구성방식으로 다른 고택과 차별화되어 있어 건물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창문의 영쌍창 구조 및 연귀맞춤의 문선 등은 조선 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건축 구조로 건축사 연구의 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