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이씨 별좌공종택(延安李氏 別坐公宗宅)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송곡리에 있는 연안이씨 별좌공 관련 주택이다. 연안이씨 선대의 옛 터전에, 조선 후기의 사고 이덕창이 건립한 종택이다.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ㅁ자형 뜰집 구조의 정침으로 정면 좌우측으로 실이 돌출한 확장형인데, 우측보다 좌측 사랑채 공간을 넓게 구획하고, 차별화된 내부 평면을 하고 있다. 종택은 창건 이후 1987년 5월 연안이씨 별좌공종택으로, 2017년 시도지정민속문화재(현, 시도지정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연안이씨 별좌공종택(延安李氏 別坐公宗宅)은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송곡리에 퇴계(退溪) 선생의 문하였던 눌헌(訥軒) 이응(李應, 15361597)의 아들인 사고(沙皐) 이덕창(李德昌, 15691616)이 창건한 종택인데, 선대의 옛 터전에 이 집을 짓고 사고구려(沙皐舊廬)라는 편액을 걸었다. 이덕창은 서애(西厓)의 문인으로 문과(文科)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에 참가한 공로로 내자시정(內資寺正)에 제수되었다. 종택은 대청에 경모당(景慕堂)이라는 편액을, 1940년 중수(重修) 후에는 긍구헌(肯構軒)이라는 편액을 사랑채에 걸었다. 송곡리는 북측의 산을 등지고 남측의 들녘과 들녘을 동서로 흐르는 송평천을 바라보고 있으며, 산자락과 농경지의 경계선을 따라 가옥들이 자리하고 있다.
연안이씨 별좌공종택은 창건 이후 안채와 사랑채 및 행랑채(行廊채)가 하나로 연결된 정침(正寢)과 대문간(大門間)채, 사당(祠堂)이 1987년 5월 시도 지정 민속자료 연안이씨 별좌공종택으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종별 변경에 따라 2017년 5월 시도지정민속문화재(현, 시도지정민속문화유산)로 변경되었다. 종택은 1991년과 1992년 사이에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를 보수하면서 정면의 석축(石築)을 보수하였고, 사당으로 통하는 협문(夾門)은 기존의 함석지붕을 한식 기와 일각문(一脚門)으로 개축(改築)하였다. 2003년에는 종택의 토벽 구조에 슬레이트를 올린 모임지붕의 대문채를 한식 기와 맞배지붕으로 개축하면서 주변의 담장과 석축을 정비하였다. 2006년에 안채와 사랑채는 번와(翻瓦) 보수를 하였고, 2015년에도 행랑채 지붕 번와 보수를 하였다. 국가유산으로 지정될 당시 종택은 사랑채에 딸린 화장실과 안채에 딸린 화장실이 있었는데, 2008년 사랑채에 딸린 화장실만 한식 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의 두 간 규모 목구조로 개축하였으며, 이때 화장실 주변의 석축 및 담장도 보수하였다.
종택은 남북으로 난 경사진 마을 길을 따라 진입하여, 다시 이 길과 직각으로 교차한 대문채 앞 안길에서 출입한다. 종택은 대문채를 제외한 사면에 토석 담장을 둘러 외부와 경계를 긋고 있고, 사당은 종택의 동측 담장 너머에 별도로 토석 담장을 둘러 영역을 마련했으며, 고택(古宅)의 동측 담장에 협문을 달아 통하도록 하였다. 종택은 낮은 야산을 등지고 양지바른 자리에 터를 잡았으며,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된 남향의 정침과 동향의 대문채, 동남향의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택의 평면은 ㅁ자형 뜰집을 기본으로 정면 좌우측으로 사랑채와 행랑채의 실이 돌출한 확장형 뜰집이다.
안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 반의 대청을 중심으로 동측에 2칸 규모의 안방과, 반 칸 규모의 도장방 및 1칸 반 규모의 부엌이 나란히 있으며, 부엌 정면으로 온돌방과 안채 문간이 있다. 대청은 현재 안방까지 마루였으며, 세로열은 도장방, 안방 웃방, 안방 순이었다. 대청의 서측에는 반 칸 규모의 제기(祭器) 방과 1칸 반 규모의 상방(上房)이 있고, 상방의 정면으로 부엌이 사랑채와 연접해 있다. 대청은 배면의 각 칸에 창문을 달았는데, 중간에 기둥을 세우는 영쌍창(欞雙窓) 구조로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사랑채는 상방 부엌에 면한, 2칸 규모의 중문간(中門間)을 중심으로 서측의 2칸 규모의 사랑방과 4칸 규모의 사랑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방은 각 1칸 규모의 사랑 아랫방과 사랑 윗방으로 나뉘어 있다. 사랑대청은 4칸 마루 중 사랑 윗방에 면한 마루 1칸만 벽체와 창호를 달아 별도로 구획해서 평면이 ㄴ자형 모습을 하고 있으며, 배면과 서측도 창호를 달아 정면으로만 개방되어 있다. 행랑채는 중문간 동측에 일렬로 있는 1칸 규모의 외양간과 뒤주, 2칸 규모의 광, 1칸 규모의 방앗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광의 서측 1칸은 문간이었고, 동측 1칸은 안방 부엌에 딸린 공간이었다. 돌출한 디딜방앗간은 내림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었고, 뒤주는 온돌 구조의 중방(中枋)이었다. 뒤주는 원래 상방 부엌에 있었으며, 상방 아궁이는 상방과 뒤주 사이에 반 칸 규모에 설치하여 통로 칸으로 이용하였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인데, 동측 끝 칸부터 1칸 규모의 대문, 온돌방, 부엌순으로 되어 있다. 중문간은 2칸으로 안마당으로 바로 진입하는 구조가 아니라 부엌 벽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어 진입하는 구조로, 일종의 내외벽 형식이다. 사당은 전퇴(前退)가 없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통간 맨바닥 구조이며, 사주문(四柱門)은 없는 상태다.
안채 대청의 기둥 상부는 내외부의 끝을 초각(草刻)한 보아지를 끼워 보를 받도록 한 납도리 방식으로 짜여 있는데, 이외에 안채와 행랑채의 기둥 상부는 보아지가 없는 납도리 방식으로 짜였다. 사랑채 대청의 원기둥 상부는 이익공(二翼工) 방식으로 결구가 되어 있고, 중간에 화반(花盤)을 놓아 장식하였다. 안채와 행랑채는 가구(架構)가 3량(三樑)인데, 사랑채는 5량(五樑)으로 측면에 충량(衝樑)을 걸어 상부의 하중을 받도록 하였다. 정침의 지붕은 맞배지붕을 기본으로 한 서산각 지붕인데, 우측 행랑채의 디딜방앗간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좌측 사랑채는 행랑채보다 용마루가 높은 팔작지붕이다. 사당의 기둥 상부는 이익공 방식인데 주두(柱頭)를 사용하지 않았다. 가구는 3량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좌우 박공(牔栱)면에 풍판(風板)을 걸어 마감하였다. 대문간 기둥의 상부는 보아지를 사용하지 않은 납도리 방식으로 짜여 있다. 가구는 3량이고,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대문채는 기둥 상부에 직절한 보아지를 끼운 납도리 구조이고, 가구는 3량이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종택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하나로 연결된 ㅁ자형 뜰집 구조의 정침으로 정면 좌우측 실이 돌출한 확장형 뜰집의 한 예인데, 우측 행랑채보다 좌측 사랑채 공간이 넓고 차별화된 내부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종택은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에 이르는, 연안이씨의 유입 및 분파 과정을 볼 수 있는 고택으로서 주거 건축 문화의 전파와 인적 교류 등 인문적 전개 과정을 살필 수 있어 주거사(住居史)와 관련하여 학술적 가치가 있다. 또한 기둥 상부의 공포(栱包) 구성 방식 및 창문의 중간설주(中間舌柱) 유구는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것으로 건축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