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단은 집터를 잡고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층 높게 쌓은 단이다. 건물의 하중을 골고루 전달하고 빗물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건물을 높게 보이게 하여 위엄과 장중함을 주기도 한다. 기단은 삼국시대부터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 중 하나였다. 재료에 따라 흙으로 쌓은 토단, 벽돌로 쌓은 전축기단, 돌로 쌓은 석축기단이 있다. 한 층의 단층기단과 두 층 이상의 다층기단이 있는데 궁궐의 정전들은 다층기단이다. 기단의 실례 가운데 감은사 금당의 기단은 용이 드나들 수 있게 한 특수한 예이다.
기단을 만드는 목적은, 첫째 개개의 초석으로부터 전달되는 건물의 하중을 받아 지반에 골고루 전달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빗물과 지하수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셋째 건물을 집터보다 높게 보이게 하여 건물에 장중함과 위엄 등을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건축물을 지으면서부터 빗물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자료로는 고구려 시대의 평양청암리사지(淸巖里寺址), 즉 금강사지(金剛寺址) 중앙의 팔각목탑지와 금당지 등에서 보이는 기단의 모습과 요동성총(遼東城塚)의 성곽도(城廓圖)에 그려진 누각의 기단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예에서와 같이 삼국시대부터 뚜렷하게 축조되어 온 기단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기단의 종류는 쌓는 재료에 따라 흙으로 쌓은 토단(土壇), 벽돌로 쌓은 전축기단(塼築基壇), 돌로 쌓은 석축기단(石築基壇), 벽돌과 돌을 섞어 쌓은 석전병용기단(石塼倂用基壇)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토축기단은 농가에서 축조되었고, 가장 널리 축조된 것은 석축기단이다.
또한, 쌓은 단의 숫자에 따라서 크게는 한 층으로 된 단층기단과 두 층 이상으로 된 다층기단으로 나뉘는데, 주택 · 사찰 · 궁궐 등 대부분의 건물들은 단층기단이고 궁궐의 정전(正殿)들은 다층기단으로 되어 있다.
즉, 근정전 · 인정전 · 명정전은 건물바닥보다 훨씬 넓은 두 층의 단을 쌓고, 다음 건물바닥 주위로 또 하나의 단을 쌓아 건물을 세운다. 이는 삼중으로 된 다층기단이지만, 이때 아래 두 단을 특별히 월대(月臺)라고 부르며, 근정전에서는 이 월대에 석조난간을 둘러 더한층 위엄을 갖추고 있다.
기단을 쌓는 마감석재의 모양과 층의 모양에 따라서는 막돌로 층의 줄눈을 맞추지 않고 쌓는 막돌허튼층쌓기의 수법과 막돌로 층을 맞추어 쌓는 막돌바른층쌓기, 또 다듬은 돌로 쌓는 다듬은돌허튼층쌓기, 다듬은돌바른층쌓기의 수법들이 있다. 이 중 다듬은돌허튼층쌓기는 대구 달성 도동서원(道東書院)의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기단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실제로 드문 예이다.
기단 쌓는 방법에 따라서 보면, 돌들을 차곡차곡 쌓는 적석식 기단(積石式基壇)과 땅에 지대석을 깐 위에다 돌기둥을 세우고, 기둥 사이에 면석(面石)을 끼워 세운 위에 갑석(甲石)을 놓아 마무리하는 가구식 기단(架構式基壇)이 있다.
적석식 기단은 조선시대에는 궁궐 · 사찰 · 서원 · 주택 등 모든 건축물에 널리 쓰였고, 가구식 기단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궁궐 · 사찰 등에 널리 쓰인 것으로 판단된다.
예컨대, 익산미륵사지석탑(국보, 1962년 지정)은 당시의 목조탑이 석조탑으로 바뀌어가는 초기양식을 보여주는데 이의 기단이 가구식 기단이며, 양산 통도사(通度寺) 대웅전의 가구식 기단에서는 면석에 연꽃을 부조한 것을 볼 수 있다.
기단을 쌓을 때, 그 넓이는 집의 바닥면적보다 넓으나, 지붕 처마선 안쪽에 놓이도록 하는데, 이는 지붕골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기단 위에 떨어짐을 막기 위한 것이다. 다만, 궁궐 정전의 월대에서는 예외이다.
또, 기단높이는 의장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지붕면이 정면이 되는 우리나라 건축에서 기단이 없거나, 그 높이가 낮을 때에는 건물외관이 볼품없게 된다. 따라서 기단의 높낮이는 공간의 위계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조선시대의 사대부집에서도 행랑채의 기단이 가장 낮고, 사랑채와 안채 등 몸채의 기단이 가장 높다. 궁궐에서는 정전의 기단이 편전이나 다른 부속전각들의 기단보다 높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공간의 위계성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기단의 실례들 가운데 감은사(感恩寺) 금당의 기단은 『삼국유사』 만파식적조(萬波息笛條)에 기술된 내용대로 문무왕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대왕암(大王巖) 수중묘(水中墓)에 묻히고 바다의 용이 되어 감은사 금당에 드나들겠다는 유언에 따라서 축조된 것으로, 다른 기단과는 달리 장대석(長臺石)으로 우물마루를 짜듯이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초석을 놓아 금당을 건립함으로써 용이 드나들 수 있게 한 특수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