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전은 경복궁 안에 있는 대비들의 침전으로, 1867년(고종 4) 자미당 터에 신정왕후를 위해 지은 전각이었으나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88년(고종 25)에 중건되었다. 경복궁 관리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경전(慈慶殿)은 정면 10칸, 측면 4칸의 장방형 평면의 동쪽 정면으로, 정면 1칸, 측면 2칸의 청연루(淸讌樓)가 건축되었고, 연이어 정면 6칸, 측면 2칸의 협경당(協慶堂)이 건축되었으며, 서쪽 뒤쪽으로 정면 2칸, 측면 6칸의 방과 대청이 부속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볼 때 ㄴ자형을 이루고 있다.
1867년(고종 4) 경복궁 재건의 제2단계 조영(造營) 때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趙大妃) 신정왕후(神貞王后)를 위하여 옛 자미당(紫薇堂) 터에 지은 연침(燕寢 : 한가롭게 거처하는 전각) 건물이다.
동행각(東行閣), 남행각(南行閣), 북행각(北行閣) 등의 부속건물과 일곽을 이루고 건립되었으나, 두 번에 걸친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88년(고종 25)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전각의 주평면(主平面)은 교태전(交泰殿)과 같은 침전이 이루는 기본적인 것으로, 중앙에 커다란 대청을 두고 그 대청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커다란 온돌방, 그리고 그 측면으로 누마루를 두었으며, 이들의 앞면과 뒷면으로는 툇마루와 좁은 온돌방을 두었다.
장대석으로 바른층쌓기를 한 높은 기단 위에 네모뿔대의 다듬은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였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 : 대접받침)를 직접 놓아 끝이 날카로운 수서〔垂舌〕 두 개를 내어 이익공(二翼工)으로 꾸몄다.
쇠서〔牛舌〕와 보머리〔樑頭〕에는 초각을 하였고, 안쪽으로는 조각된 보아지를 내었다. 주두 위에는 도리 방향으로 된 첨차(檐遮)를 놓아, 소로를 얹어 굴도리의 장여를 받치고 있다.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끝이 초각된 쇠서모양의 부재를 화반 대신 두 개씩 얹어두었다.
가구(架構)는 앞면의 퇴주(退柱)와 안쪽의 고주(高柱) 사이에는 퇴보〔退樑〕를 걸고 있으며, 내부의 두 고주 사이에는 대들보를 걸고 그 대들보 높이에서 우물천장을 가설하여 천장 속을 가리고 있다. 정면의 중앙 세 칸은 툇마루로 개방하고 나머지는 띠살창호를 달았으며,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모두 양성을 하여 용머리로 장식하였다. 전각을 둘러싸고 있는 행각과 담장에는 여러가지 무늬가 장식되어 있어 그 꾸밈이 매우 아름답고, 특히 북행각에 이어져 있는 십장생도가 그려진 굴뚝은 따로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자경전은 대비전으로, 현재 경복궁 안에 남아 있는 유일한 연침 건물이라는 데에 그 역사적 건축사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