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임영관 삼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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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강릉 임영관 삼문 우측면
강릉 임영관 삼문 우측면
건축
유적
국가유산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고려시대 강릉 객사의 문(門).
이칭
이칭
강릉 객사문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강릉 임영관 삼문(江陵 臨瀛館 三門)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1962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강원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 (용강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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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에 있는 고려시대 강릉 객사의 문(門).
내용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기와건물. 본래 강릉객사의 정문으로, 오늘날 주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그 정문만이 강릉경찰서 마당에 남아 있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승려 범일(梵日)이 관사(官舍) 터에 절을 지었으나 절은 병화(兵火)로 소실되고 그 문만이 남아 있다가 그 자리에 부관(府館)을 옮겨 지음으로써 객사문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염양사(艶陽寺)의 삼문(三門)을 객사로 옮겨 지었기 때문에 사문(沙門)이라 불려 왔다고도 한다.

양식은 주심포식(柱心包式)으로 되어 있고, 그 평면은 측면 중앙칸 자리에 세운 기둥들 사이사이에 커다란 널판장문을 쌍으로 정면 3칸에 달아 실(室)은 하나도 없다.

본래의 기단 모양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고, 막돌초석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측면 중앙 옆에서 문짝을 달게 된 기둥들만은 방주(方柱)를 세운 것이 주목된다.

기둥 윗몸은 창방(昌枋)으로 결구(結構)하고, 거기에서 헛첨차를 내어 주두(柱頭: 대접받침) 위에 놓은 초제공(初諸工) 위의 첨차를 받치고 있다.

기둥 위에 놓은 주두와 헛첨차 위에 놓은 소로[小累]들은 굽면이 모두 곡면이고 굽받침이 있으며, 또 헛첨차가 있고 첨차의 밑면은 모두 연화두형(蓮花頭形)으로 조각되어 있어서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수덕사 대웅전의 주두 및 첨차와 그 모습이 흡사하다.

그러나 수덕사 대웅전에서는 헛첨차의 안쪽에 보아지가 있어 퇴보[退樑]를 받치고 있지만, 이 객사문에서는 보아지가 없고 창방이 직접 결구되어 있다.

공포(栱包)는 외이출목(外二出目) · 내일출목(內一出目)으로, 초제공 위에는 일반적으로 살미첨차를 놓는 것과는 달리 보를 놓고, 보머리[樑頭]끝을 쇠서[牛舌]로 하였음이 특이하다.

문루에는 고려시대 공민왕의 친필인 ‘임영관(臨瀛館)’이라는 가로 3m, 세로 1.2m 크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참고문헌

『국보』11 궁실건축 (신영훈 편, 예경산업사, 1985)
『한국건축미』(주남철, 일지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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