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2월 중국 광둥[廣東] 지방에서 조직된 청년단체로 한국국민당청년단(韓國國民黨靑年團)과 함께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의 조직 기반 확대를 위한 산하 단체로 조직되었다.
김구(金九)와 안공근(安恭根)은 광둥 지방에서 한국국민당의 기반 강화와 세력 만회를 위해 김인(金仁)과 안우생(安禹生)을 파견하였다. 이들은 광저우[廣州]에 있는 중산대학(中山大學) 학생으로 임정계(臨政系) 청년인 김창만(金昌滿), 김덕목(金德穆), 김용(金鏞), 마초군(馬超軍) 등과 협력하여 민족혁명당(民族革命黨) 광둥지부 당원 안병무(安秉武), 한태인(韓泰寅) 등의 협조를 얻어 한국청년전위단을 조직하였다.
전위단은 창립 선언서에서 한국국민당의 청년전위단체로서 결성되었음을 명확히 밝히고, 한민족을 대표하는 한국국민당의 기치 하에서 민족적 총단결을 지향하며,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우리 전선을 영도'하는 김구의 지도하에 일제의 식민통치를 무너뜨리고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결성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생명을 민족해방운동에 바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정보 수집, 일제의 관공서 파괴 및 요인 처단을 통한 적 후방의 교란, 선전유인물 배포 활동이었다. 기관지로 『전선』을 간행하여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8월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우익계열 통일전선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韓國光復運動團體聯合會)에 합류하였으며, 9월 한국국민당의 또 다른 산하단체인 한국국민당청년단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11월 임시정부가 창사[長沙], 광저우 등지로 옮겨가면서 피난생활을 하게 되자 별다른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