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아버지는 좌리공신(佐理功臣) 우의정 한백륜(韓伯倫)이다. 안순왕후(安順王后)의 동생이며, 한호(韓濩)의 할아버지이다. 1498년(연산군 4) 음보(蔭補)로 참군(參軍)에 등용된 뒤, 군자감주부·공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연산군의 처남 신수영(愼守英)이 그의 여동생의 남편이 됨을 기회로 동부승지·우승지가 되었고, 왕의 방자한 행동을 조장하고 권세를 휘둘러 조관(朝官)에게 횡포를 부렸으며 궁녀와 간통하는 등 발호가 심하였다.
그러나 1506년의 반정 당일에 반정군에 가담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서원군(西原君)에 봉하여졌다. 그러나 홍문관부제학 이윤(李胤)으로부터 폐조(廢朝 : 연산군)의 총애하는 신하라 하여 탄핵을 받아 벼슬에서 물러났다.
뒤이어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로 가던 도중 의주에서 병으로 되돌아왔다. 1508년(중종 3) 숭정대부(崇政大夫)에 가자(加資)되고, 서용의 명이 내려졌다가 폐조 때의 발호한 일로 계속 삼사의 탄핵을 받아 산관(散官: 실직이 없는 관직)으로 있었다.
1519년 위훈삭제(僞勳削除)의 일환으로 한때 삭훈되었다가 조광조(趙光祖) 등의 실각으로 복직되었으며 2년 후 진향사(進香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7년 충훈부 유사당상이 되었다가 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공신집안 출신으로서 방자한 행동과 과부로 있는 동생과 간통하는 등의 음란한 행위를 자행하여 당시의 사림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