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국(掖庭局)의 후신이다. 고려의 대표적인 잡직관부로서 왕의 측근에서 왕명을 전달하고,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를 공급하며, 궁궐문의 자물쇠와 열쇠의 관수(管守) 및 궁궐 안뜰의 포설(鋪設) 등에 관한 임무를 관장하였다.
액정국은 국초에는 액정원(掖庭院)이라 하였다가 995년(성종 14) 액정국으로 되고,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에 의하여 내알사(內謁司)로 되었다가 1년 뒤 다시 액정국으로 복구되었으나, 1310년(충선왕 2) 항정국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말에는 결국 액정국으로 환원되었다.
이상의 빈번한 명칭의 변경은 당시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관제의 명칭이 소멸, 변경되기도 하였으나, 그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구제(舊制)를 고수하려는 고려조정의 노력에 의한 관제개혁 때문이라고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액정서라 하였으며, 보다 세분화된 직제를 통하여 궁궐내 제반잡무를 총괄하였다. 특히, 고려시대 액정국은 신분제에 의하여 관계진출에 제한을 받던 남반(南班)의 초입사로(初入仕路)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