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년(예종 1) 왕명으로 유신(儒臣) 및 태사관들이 음양지리제가서(陰陽地理諸家書), 즉 도참서를 산정(刪定)하였다.
이 작업에는 김인존(金仁存)·최선(崔璿)·이재(李載)·이덕우(李德羽)·박승중(朴昇中) 등이 참여하여 1권으로 완성시켰는데, 예종은 ‘해동비록(海東秘錄)’이라고 책명을 정한 다음 정본은 왕실에 비치하게 하고, 부본을 만들어 중서성·사헌대·태사국에 보관하게 하였다.
이 책은 종래의 도참서류가 망라되어 우리나라 최초로 공인된 도참서라는 특징이 있다. 그 이전에 유행하던 도참서의 명칭으로 보아 여기에는 『신지비사(神誌祕詞)』·『도선밀기(道詵密記)』·『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삼한회토기(三韓會土記)』 등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도참서명으로 볼 때, 일연(一然)도 이를 열람하였던 것 같으나 언제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려왕조 사관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조선 초인 1458년(세조 4)·1469년(예종 1)·1470년(성종 1) 때의 대대적인 도참서 수집을 전후해서 자취를 감춘듯하며, 그 뒤에 나타난 조선시대의 『정감록(鄭鑑錄)』에도 같은 이름들이 보이지만, 『고려사(高麗史)』에 인용된 부분과 대조해보면 내용이 서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