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당시의 일반적인 유통 체제였던 물품화폐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재정과 국민경제를 증진하기 위해 명목화폐인 주화(鑄貨 : 銅錢)를 주조, 유통시키게 되었다.
대체로 해동통보와 같은 시기에 주조, 유통된 것으로 보이는 동전에는 건원중보(建元重寶 : 東國通寶) · 동국중보(東國重寶) · 해동원보(海東元寶) · 해동중보(海東重寶) · 삼한통보(三韓通寶) · 삼한중보(三韓重寶) 등이 있다.
고려 왕조는 1097년(숙종 2) 12월에 주화를 법화(法貨)로 주조, 유통할 것을 결정하고, 주전관(鑄錢官)을 두어 그 업무를 담당, 수행하게 하였다.
1101년 4월에는 주전도감(鑄錢都監)에서 국인(國人)이 비로소 주화를 사용하는 것이 이롭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종묘에 알리자고 건의하였다.
이듬해 12월에는 주전법을 제정, 주조된 해동통보 1만 5000관을 재추(宰樞) · 문무양반 · 군인에게 나누어주고 동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종묘에 알렸다. 동전을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개경 시내에 주점(酒店)과 점포를 설치해 동전을 주고 상품을 거래하게 하여 화폐 사용의 편리함을 주지, 인식시키려 하였다.
한편 1104년 7월에는 주현으로 하여금 미곡을 출자해 주식점을 설치하고, 백성들이 동전을 가지고 술과 음식을 사먹게 하여 화폐 가치를 널리 인식시키도록 지시하였다.
이와 같이 동전을 중앙 및 지방에 유통, 보급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조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종 때에 이르러서는 해동통보를 비롯한 각종 동전의 유통은 중단되었다. 명목화폐인 주화를 수용할 사회경제적 여건이 미비하고, 화폐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화 제도가 가지는 모순성 또한 각종 동전의 유통이 중단된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