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고지(高志), 아명은 사수(史首). 일본의 화천국(和泉國) 출신. 아버지는 사양(史羊)이고, 어머니는 봉전약사고(蜂田藥師古)이다. 683년 15세 때 출가하여 호고우사(法興寺)에 살면서 불교의 기초를 닦았고, 야쿠시사(藥師寺)로 옮긴 후 법상유식(法相唯識)의 교의를 학습하였다.
24세 때인 693년에 고우칸사(高官寺)덕광(德光)으로부터 구족계를 품수받고 도소(道昭)와 함께 유가유식(瑜伽唯識)을 공부하였다. 704년에 집으로 돌아와 옛집을 절로 고치고, 어머니를 봉양하였으므로 재가사(在家寺)의 시조가 되기도 하였다. 민중과 더불어 관법과 정업을 닦았으므로 추종한 자가 항상 1,000여 명이나 되었다.
또한 민중을 위하여 제자들과 전국을 순행하면서 교량건설, 제방공사, 도로보수, 전답개간, 항구건설 등 민중을 위한 복리사업을 도모하였다. 717년에는 백성을 괴롭히는 승도를 다스리는 법을 설하였고, 726년에는 산기(山崎)의 교량을 조성하여 대법회를 개설하였다. 731년에는 하내국(河內國) 협산지원(狹山池院)을 건축하였고, 또한 행기를 따르는 우바새·우바이 가운데 노령한 사람은 출가를 허락하여 수행을 자유롭게 하였다.
733년에는 곤요우사(昆陽寺)를 창건하여 스스로 조각한 약사여래와 11면관음상을 안치하였다. 또한 온천을 개발하였고, 시약원(施藥院)을 두어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을 간호하였다. 745년에는 일본 승단의 최고직인 대승정(大僧正)으로 추존되었는데, 당시 행기를 따르는 승도가 3,000명이나 되었다.
749년 82세에 입적하여 생구산(生駒山) 동악에 장사하였다. 불교를 통한 중생 구원, 국리민복을 우선으로 하는 보살행을 행한 백제계 승려로서 그 종교적 활약이 지대했으므로 일본에서는 살아 있는 보살로 찬양 공경하였다. 업적은 사찰 49개 소, 교량 6개, 제방 15개 소, 항구 2개 처, 복지사업소 9개 소를 조영하여 일본불교의 최고 교화승으로 섬겨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