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1975. 본명은 장현(長顯). 서울 출신. 서울에서 인문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어서 부기학교를 다녔다. 광복 후 반도가극단(半島歌劇團)에 들어가 연기자생활을 시작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방부 정훈국에 들어갔고, 1952년 육군 군예대(KAS)에 복무했다. 이 시절 만난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데뷔작 「아리랑」(1953)에 출연함으로써 영화계에 데뷔하였으며, 이어 「피아골」(1954)에 출연함으로써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그 뒤 1975년 영화인친선축구대회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을 때까지 20여년 동안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함으로써, 1960·1970년대 한국영화의 개성 있는 연기자로서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주연보다는 조연급의 악역을 주로 하였으며,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풍부한 인간미와 구수한 유머감각으로 대중의 인기를 모았다.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상록수」(1961)로 아시아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청룡영화상(조선일보사 주최) 남우조연상과 한국일보 연극영화상 남우조연상 등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