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현곡(玄谷) 유영선(柳永善)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92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장대석 기단 위에 방형의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지은 정면 4칸의 一자형 팔작집이다. 평면은 마루방 · 방 · 대청 · 건넌방 순으로 실이 구성되어 있는데, 건넌방 뒤에는 작은 골방이 붙어 있다.
누마루와 같이 바닥면을 높게 구성한 마루방 전면에는 ‘尙志軒(상지헌)’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나머지 실(室) 앞에는 모두 툇마루가 시설되어 있고, 또한 집의 양측에도 각각 쪽마루를 놓아 출입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1936년 현곡은 이 건물 앞에 다시 판경당을 건립하였는데, 현곡정사와 같은 축선상에 낮게 자리하고 있다. 외벌대 기단 위에 정성들여 치석한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는데 소로수장집의 건실한 모습이다.
정면 5칸의 전후퇴집의 구조인 판경당은 좌측부터 2칸의 방과 대청, 그리고 한 칸의 방으로 실이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 3면에는 후대에 툇기둥을 세우고 가적지붕처럼 퇴를 달아냈는데 그 구조가 매우 짜임새 있다.
1956년에는 정사 서북편 가장 높은 곳에 사우를 건립하고 간재(艮齋)전우(田愚)의 진영을 봉안함으로써 정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전우는 현곡의 스승이며 정사를 짓기 전에 이곳에서 1년간 강학을 하였다.
사우인 용암사(龍巖祠)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맞배집이며, 지금은 간재와 현곡의 영정과 위패를 같이 봉안하고 있다. 이외에도 현곡정사 내에는 관리사와 벽돌조의 장서각이 있는데, 장서각에는 현곡이 저술한 문집과 가문에서 보존해온 2만여권의 장서 및 유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