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서울에 거주하는 한정(閑丁)을 선발하여 충당하였다. 선발방식은 해당 패두(牌頭)가 신체 건장한 자를 선발하여 낭청(郎廳)이 심사한 뒤, 사복시(司僕寺)의 관리가 다시 면접 심사를 하여 충원하는 까다로운 절차였다.
인원은 360인으로, 부족할 때에는 병조에서 대가를 주고 고용하였다. 종별은 정련배(正輦陪)·부련배(副輦陪)·왕교배(王轎陪)·양산선차비(陽繖扇差備)·등롱군(燈籠軍)·의장군(儀仗軍) 등이 있었다.
경기영(京畿營)은 서울 소재 군영에 소속된 군병의 예에 따라 요패(腰牌)를 낙인하여 주고 명부에 등록하여, 왕가(王駕)의 거둥 및 전좌(殿座) 때 분군(分軍)을 맡은 부장(部將)이 인솔하여 배종(陪從)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