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공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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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고려 때 사학(私學)인 12도(十二徒)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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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때 사학(私學)인 12도(十二徒)의 하나.
내용

문종 때 정배걸(鄭倍傑)에 의하여 개성 남문 밖에 설립되었다. 일명 웅천도(熊川徒)라고도 한다.

정배걸은 1047(문종 1)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는데 일찍부터 자제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져오던 중, 최충(崔冲)이 문헌공도(文獻公徒)를 설립한 뒤 남문 밖에 사숙(私塾)을 개설하여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가 죽은 뒤 국가로부터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과 개부의동삼사수태위문하시중상주국광유후(開府儀同三司守太尉門下侍中上柱國光儒侯)에 추증되었다. 이로써 그의 문도(門徒)들은 이후 홍문공도로 불리게 되었다.

무인집권기인 1205년(희종 1)에는 홍문공도로서 과거에 급제한 임득후(林得候)가 자기 문도의 선성당(宣聖堂)을 팔아먹었다는 죄로 벌을 받는 내용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당시에도 홍문공도는 크게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1391년(공양왕 3) 사학교육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12공도와 함께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국자감과 사학」(박성봉, 『한국사』6, 국사편찬위원회, 1975)
「고려시대의 유학발달과 사학십이도의 공적」(박성봉, 『사총』2, 1957)
「고려시대교육제도에 대한 일고찰」(김정옥, 『이화여대칠십주년기념논문집』,1956)
「麗末鮮初の私學」(柳洪烈, 『靑丘學叢』24, 1936)
집필자
김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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