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국호를 개정하기 위해 명나라에 택정을 청했던 명칭.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직후에 국정에 대한 강령 17개조를 발표하는 등 건국 후의 제반 조처를 강구하였다. 이 중에 하나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국호의 개정이었다.
이성계는 주문사(奏聞使)로 중추원사(中樞院使) 조림(趙琳)을 명나라에 파견해 신정권의 수립을 고하는 한편, 국호 개정의 뜻도 전하였다. 명나라 태조(太祖 : 朱元璋)는 신정권의 수립을 승인하는 동시에 국호 개정에 대한 보고도 속히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성계는 기로(耆老)와 백관을 도당(都堂)에 모아서 국호를 의논하도록 했는데, 그 결과 ‘조선(朝鮮)’과 ‘화령’이라는 두 명칭이 정해졌다.
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 등 우리 나라 역사상 오랫동안 유래되어온 명칭이고, 화령은 1369년(공민왕 18) 화주목(和州牧)에서 개칭된 지역명으로 이성계의 출생지이자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이유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화령은 1393년(태조 2)에 다시 영흥(永興)으로 바뀌게 되었다.
1392년 11월 예문관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다시 명나라에 파견해 국호 개정의 뜻을 전하고, ‘조선’과 ‘화령 둘 중에서 국호를 택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듬해 2월 한상질이 명나라 예부(禮部)의 자문(咨文 : 중국과 왕래하던 외교 문서)을 가지고 왔는데, 여기서 화령은 폐지되고 조선이 택정되었다.
이 자문을 보면 조선을 택정하게 된 이유가 나타나 있다. 즉, “동이(東夷)의 국호에 다만 조선의 칭호가 아름답고, 또 그것이 전래한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이 명칭을 근본으로 삼아 후세에 이를 본받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따라서, 화령은 폐기되고, 1393년 2월 15일에 국호를 조선이라 칭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