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령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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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령전 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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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영전(靈殿).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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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영전(靈殿). 사적.
개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화령전(華寧殿)은 화성 안에 지은 정조의 영정(影幀)을 모신 전각이다. 정조는 1800년 6월 28일 49세를 일기로 승하하였으며 처음에는 영정을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 봉안각에 모셨었으나 화성행궁이 완성된 후 행궁으로 옮겨 모셨다. 그러나 행궁도 본래 영정을 모시는 곳이 아니므로 1801년 별도로 영정을 모실 화령전을 행궁 옆에 나란히 건축하여 영정을 모시게 되었다.

내용

화령전의 영건 총책임은 수원부유수인 이만수에게 맡겼으며 실제 현장감독은 진위군별장 이건수가 담당했다. 공사는 정조 승하 직후부터 시작되어 이듬해 정월에 완성하고 정조의 영정을 대소 두 가지로 만들어 큰 것은 화령전 정전에 걸고 작은 것은 상자에 넣어 건물 안에 봉안하였다.

화령전의 제향은 정조대왕의 탄신일과 납향일(臘享日)인 동지 뒤의 세 번째 술일(戌日)에 행해졌다. 그러나 1920년 일본인들에 의해 영정이 창덕궁의 선원전으로 옮겨지면서 화령전의 제향은 중단되었다. 창건시 화령전의 주요건물은 정전인 봉안각과 이안청(移安廳), 재실, 전사청, 향대청, 제기고가 있고 외삼문, 내삼문, 중협문 등이 있었다.

화령전은 전체적으로 행궁과 같이 동향하고 있는데 제일 앞에 외삼문을 시작으로 중축선상에 내삼문, 정전으로 이어지고 정전 향우측에는 정전을 향해 이안청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정전과 이안청은 복도각(複道閣)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안청은 정전에 이상이 발생하였을 때 영정을 임시로 옮겨 보관하는 건물로 정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재실은 헌관이 머무는 건물로 정전 앞마당의 향우측에 있다. 현재는 별도의 담장으로 구성해 두 칸 협문을 앞에 두고 배치되어 있다. 이것과 대칭으로 향좌측에 전사청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실되었던 전사청 영역은 2005년에 복원되었다. 전사청과 제기고는 별동이 아닌 같은 평면 안에 있었던 것으로 발굴 결과 밝혀졌다. 재실과는 대칭으로 있으며 전사청 안쪽 정전 옆으로는 제정이 있다. 그리고 제정과 전사청은 별도의 영역으로 담장이 둘러 있고 역시 2칸의 협문을 정전 앞마당 쪽에 두고 있다. 거의 제 모습을 찾았으나 향대청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재실과 전사청 영역은 내협문과 외협문 사이공간에서 직접 출입할 수 있는 중문이 각각 별도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재실 중문은 남아 있는데 전사청 중문은 아직 미발굴인 상태이다. 현재 정전인 봉안각은 운한각(雲漢閣), 재실은 풍화당(風化堂)이라는 당호가 붙어 있는데 언제부터 이러한 편액이 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20세기 초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화령전 정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전면 퇴칸은 일반 사당과 같이 벽 없이 트여 있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으로 민흘림이 있고 기둥머리는 창방으로 연결되고 주상에만 포를 올렸는데 외1출목 이익공형식이다.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정칸 뒤쪽에는 양쪽에 고주를 세우고 4짝 세살청판분합을 달았으며 분합 안쪽에는 어탑이 설치되고 어탑 위에는 오봉산 병풍을 뒤에 두고 앞에 정조의 영정을 걸었다. 가구는 2고주 7량가 이다.

의의와 평가

화령전은 지방에 지어진 영전의 사례이며, 현재 많은 영전(靈殿) 중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창덕궁 선원전과 전주 경기전 그리고 화령전 뿐이다. 따라서 화령전은 조선시대 영전의 전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화령전의 운한각 · 이안청 · 복도각은 2019년 보물 2035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한국의 건축문화재–2경기편』(김홍식.김왕직, 기문당, 2012)
『경기도건조물문화재 실측조사보고서』(경기도, 1995)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김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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