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가 ()

고전시가
작품
1896년 민용호(閔龍鎬)가 지은 항일 의병 가사.
정의
1896년 민용호(閔龍鎬)가 지은 항일 의병 가사.
구성 및 형식

1895년(고종 32)강릉에 창의소(倡義所) 를 설치, 1896년까지 의병의 항왜 내력을 기록한 『관동창의록(關東倡義錄)』에 게재되어 있다.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127행이다.

작자인 민용호는 의병 활동을 하면서 강릉을 중심으로 동해안 여러 지역에서 왜병에게 항전하였다. 그가 함흥에 이르니 함흥부 참서관(參署官) 김택수(金澤秀)는 관북에서 친일의 괴수로서 의병을 치기 위해 상금으로 2,500금을 걸어 관포(官砲)를 유혹하였다. 포수들이 의병이 옳다고 주장해 따르지 않자 그는 홍원으로 도망쳤다. 이를 알고 작자가 함흥 객사에서 감회에 젖어 이 작품을 짓게 되었다.

내용

내용은 먼저 우리 나라가 훌륭한 왕도를 가진 예의지국으로 의관을 잘 갖춘 민족이었고, 상투는 관례의 한 표본이었다고 노래하였다. 이어 왜는 임진년에도 우리를 침범해 곽재우(郭再祐) 등 의병이 크게 일어났는데, 그 때의 수치를 잊었는지 개화라 칭탁하고 또다시 침범하였다.

게다가 국모를 시해하고, 문벌까지 타파하며 단발령을 내려 상투까지 깎게 하였다. 세록지신(世祿之臣)도 왜를 따르고 병정들은 호구를 위해 역시 왜를 따르고 있다. 이에 의병을 일으켜 국은을 갚고 왜를 물리치고자 하는 큰 뜻을 세우게 되었다고 노래하였다.

의의와 평가

의병 가사인 유홍석(柳弘錫)의 「고병정가사(告兵丁歌辭)」가 같은 해 2월에 지어졌고, 이 가사는 4월에 지어져 시기는 뒤지나 의병 봉기의 의의, 당시 관료와 병정들의 처지 등을 잘 밝히고 있어, 한 말 의병 연구와 아울러 가사 문학사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한국문학통사』 4(조동일, 지식산업사, 1986)
『관동창의록』(민용호, 『한국사료총서』30, 국사편찬위원회, 1984)
『한국가사문학론』(정재호, 집문당, 1982)
집필자
정재호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