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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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때의 문신 · 학자, 이수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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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개항기 때의 문신 · 학자, 이수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1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8권 4책. 목판본. 1911년경 손자 규호(圭浩)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동국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부(賦) 1편, 시 373수, 권3에 소(疏) 3편, 서(書) 56편, 권4에 서(書) 49편, 잡저 3편, 서(序) 9편, 권5에 기(記) 17편, 발(跋) 8편, 송(頌) 1편, 명(銘) 1편, 상량문 3편, 축문 3편, 제문 4편, 권6에 제문 27편, 애사 9편, 묘갈명 4편, 권7에 행장 10편, 전(傳) 4편, 권8은 부록으로 묘갈명·가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 중 「동영유복합소(同嶺儒伏閤疏)」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최익현(崔益鉉)의 탄핵을 받고, 고종 또한 친정을 선포하여 정치간여를 금함에 따라 양주(楊州)로 물러나게 되자, 대원군의 환차(還次)를 상소한 글이다.

「논지방군무소(論地方軍務疏)」에서는 지방군대의 장교를 임명할 때 해당지방의 무예가 깊고 명망이 있는 가문의 사람들을 특별히 선발하여 임명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밖에도 「상흥선대원군(上興宣大院君)」을 비롯하여 판서·참판·승지 등 당대 관리들에게 보낸 서신들과, 14편에 달하는 여러 사람들의 행장 및 전기들은 극히 혼미하였던 19세기 말의 국내정세와 인물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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