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45년(영조 21) 조선 후기의 화승 의겸(義兼) 외 9명의 화원이 공동으로 그린 불화이다. 의겸은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활약한 저명한 화사승이다. 그의 일행은 여러 곳에서 괘불탱을 제작하여 유사한 형식을 형성하였는데, 내소사 괘불탱(1700년), 청곡사 괘불탱(1722년), 개암사 괘불탱(1749년) 등이 그들의 작품이다. 개암사 괘불탱과 비슷한 밑그림으로 제작된 이 괘불탱은 왕·왕비·세자의 만수무강을 빌고, 그 조성 공덕으로 인해 모든 중생이 불도를 이루기를 원하고 있다. 화기에 의하면 원래 금성산(錦城山) 보흥사(普興寺)에 봉안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석가불·문수보살·보현보살의 석가삼존불입상을 중심으로 윗부분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다보여래와 아미타여래가 짝을 이룬 구성으로, 이는 당시 성행하던 형식이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의 법의를 걸친 석가불은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들었다. 중앙계주와 정상계주를 갖춘 나발의 머리모양에, 장방형의 얼굴 가운데로 몰린 눈과 작은 입의 표현이 개암사 괘불탱과 유사하나 각진 어깨 등에서 경직된 면이 돋보인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각기 여의와 연꽃을 들고 있다. 보관에 화불을 모신 관음보살은 백의를 걸쳤고 대세지보살·다보여래·아미타여래는 합장한 자세이다. 키 모양의 광배를 지닌 석가불의 가슴에 새겨진 ‘卍(만)’자 안에도 ‘梵(범)’자가 등장하는데, 이 ‘梵(범)’자는 신체에 전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옷 문양은 화사하나 형태·채색·필선 등에서 정교함이 줄어든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의겸의 말년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극락왕생하여 무량수 부처님을 뵙고 모두 불도를 이루기를 원한다는 발원문의 내용은 만연사 괘불탱(1783년)에서도 발견된다. 불화 제작자와 제작연대, 발원동기가 정확히 파악되어 있는 괘불탱으로, 조선 후기의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