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사 경내 뒤편 야산에 위치한 미륵불입상으로, 조성양식으로 보아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1999년 7월 9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은 원래 땅속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약 150년 전 다시 발견되었다고 전한다. 이 불상이 발견되자 당시 마을 사람들은 미륵불이 땅속에서 솟아났다고 믿어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미륵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용화사도 일명 미륵사라 불리고 있다.
높이는 450㎝이며, 상호는 아랫부분이 넓은 사각형으로 양 볼은 팽팽하게 살찐 모습이다. 눈초리가 약간 올라간 눈과 콧방울이 넓게 자리 잡은 코, 입술을 다물어 희미하게 미소 지은 얼굴은 대체로 논산 관촉사(灌燭寺) 석조보살입상과 유사하여 관촉사 석조보살 계통의 조각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얼굴의 표정은 매우 현실적이고 토속적이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크게 조각되어 약 4등신의 신체 비례감을 나타낸다.
머리에는 둥근 갓 형태의 보개(寶蓋)를 쓰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보개는 주로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석불상에 나타나고 있는데, 다른 예들과 비교하여 보개의 지름이 짧고, 낮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귀는 길게 늘어져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다. 신체는 석주형으로 가늘고 긴 형태이다. 대부분의 석주형 불상이 밋밋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이 불상은 어깨와 팔의 곡선을 나름대로 살리면서 신체의 굴곡선을 살리고자 한 흔적이 엿보인다.
대의는 양 어깨를 덮은 통견으로 가슴부분이 V자형으로 조각되어 있고, 소매의 폭은 고려 전기 석불들과 비교하여 급격하게 줄어든 점이 주목된다. 양손은 소매 속으로 넣어 맞잡은 모습이다. 옷주름은 균일한 간격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하의(下衣)에 표현된 물결형 옷주름이 눈에 띈다. 이와 유사한 물결형 옷주름은 충주 창동마애불입상 등의 예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비교된다. 석불상 앞에는 가로 228㎝, 세로 210㎝의 지대석이 남아 있다. 지대석 중앙에 방형공(方形孔)이 있는데 현재는 시멘트로 메워졌다.
이 불상은 대체로 고려 전기 석불의 형식과 양식을 따르면서도 옷깃의 표현이나 소매 폭의 형태, 수인의 형태 등으로 시대적 하강을 읽어낼 수 있어 고려 후기의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