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적사 석가여래삼존상 ( )

군산 은적사 석가여래삼존상
군산 은적사 석가여래삼존상
조각
유물
국가유산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소룡동 은적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은적사석가여래삼존상(隱寂寺釋迦如來三尊像)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지정기관
전북특별자치도
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00년 11월 17일 지정)
소재지
전북 군산시 설림3길 49, , 1332-1 (소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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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소룡동 은적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개설

은적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석가여래삼존상으로, 불상 조성기(造成記)에 의해 1629년(인조 7)이라는 확실한 조성시기를 알 수 있다. 2000년 11월 1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내용

주존인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봉안한 목조삼존불좌상이다. 석가불좌상의 높이는 113㎝이며, 문수보살좌상은 112㎝, 보현보살좌상은 113㎝이다. 석가불좌상의 상호는 사각형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다. 눈은 가늘게 반개하였고, 코는 콧등이 날카롭지 않고 둥글려졌다. 인중이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작은 입에는 약간의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정은 근엄하면서도 침잠하여 조선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이고 육계와의 경계가 모호하여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정착되기 시작한 정상계주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중앙계주가 크게 조각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신체는 당당한 편이나 무릎의 높이가 낮아져 상체에 비해 하체가 빈약한 모습이다. 양감이 넘치는 어깨에는 통견의 대의가 걸쳐져 있는데 오른팔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착의법은 조선 전기의 불상에서부터 조선 후기 김제 흥복사나 예산 수덕사, 영광 불갑사 목조불좌상 등 17세기 목조불좌상에 많이 나타나 있어 비교된다. 오른쪽 어깨를 덮은 옷자락의 하단은 물결처럼 홈이 파였는데 완주군 정수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의 관음보살좌상 등의 예와 비교할 수 있다.

왼쪽 목옆의 옷깃은 어깨에서 한 번 접혀져 있으며, 왼팔을 감아 내려온 소맷부리는 무릎 위로 흘러내린다. 훤히 드러난 가슴은 양감 표현은 되어 있지만 볼륨감이 표현되지 않아 밋밋하다. 역시 밋밋한 복부에는 일직선 형태의 내의가 보인다. 통통한 오른손은 무릎 위에 손가락을 가지런히 내리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 무릎 위로 살짝 떨어져 있다. 이러한 형태로 보아 수인은 항마촉지인으로 보이며 이 불상의 존명은 석가로 보인다. 빈약한 하체는 결가부좌를 결하고 양 무릎의 옷주름 선은 넓은 곡선과 중앙의 부채꼴형 주름으로 되어 있다.

우협시보살인 보현보살좌상은 조선 후기 보살상으로는 화려한 편에 속한다. 사각형의 통통한 상호 표현은 본존인 석가불좌상과 동일하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내관(內冠)과 외관(外冠)으로 구성된 이중관이다. 외관은 상단과 하단의 2단으로 구성되었다. 상단은 초화문(草花文)을 투각하여 적갈색으로 칠을 하여 하단과 구별하였다. 상단과 하단을 각각 5개와 3개의 화염문(火焰文) 꾸미개로 장식하였다. 내관은 높은 상투관의 형태와 유사하다. 검은 바탕에 네 개의 금색 줄을 만들어 놓았다. 보관 밑에는 관대장식이 늘어뜨려져 있는데 고려 후기나 조선 전기 보살상의 관대 방식과는 달리 관대의 수가 줄어들고 율동감도 훨씬 줄어들어 간결하면서도 정제된 모습이다.

귀에는 원형의 귀걸이를 하고 있다. 귀를 한 번 돌아내린 보발은 어깨선을 따라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움츠러든 목에는 아래로 쳐진 형식적인 삼도가 조각되어 있다. 신체 표현은 조선시대 불상의 특징인 블록화된 신체이다. 조선 전기에 비해 어깨의 폭도 줄어들고 무릎의 높이와 폭도 현저히 줄어들어 빈약함이 느껴진다. 천의는 이중착의 방식으로 숄형의 천의를 양쪽 어깨를 가리도록 두른 후 띠형 천의를 다시 둘렀다. 석가불좌상 왼쪽 어깨에 보이는 한번 접힌 옷자락표현을 양쪽 어깨에서 볼 수 있다. 팔과 손목에는 영락장식이 조각되었다. 천의 사이로 시원하게 드러난 상체는 밋밋하다. 손에는 반쯤 핀 연화가지를 받쳐 들고 있다. 하체는 배를 일자로 가로지르는 군의(裙衣)로 감싸여 있다.

이 보살좌상에서 가장 주목되는 표현은 배에 장식된 연판장식과 축 늘어진 군의매듭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연판장식은 반쪽의 연꽃을 나타낸 것으로 꽃잎이 이중으로 조각되었다. 연판장식 아래로 리본형의 군의매듭이 조각되어 있다. 결가부좌를 취한 다리는 볼륨감과 양감이 현저히 줄어 앙상한 느낌마저 든다. 다리 중앙에는 부채꼴형 주름이 유려하게 조각되었다.

좌협시보살은 문수보살좌상으로 보현보살좌상과 손의 위치와 천의의 표현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손의 위치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도록 반대로 하였고, 손에는 아직 피지 않은 연봉오리를 잡고 있다. 천의는 보현보살좌상과는 달리 대의형 천의로 통견이다. 목 부분에 접힌 옷자락 표현과 다리의 부채꼴형 주름은 보현보살좌상과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양 어깨와 팔을 가린 긴 포(袍)형의 대의형 천의, 내의쪽으로 들어가는 옷자락 표현 등에서 차이가 난다.

특징

이 석가여래삼존상은 주존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협시로 모신 전형적인 석가삼존불의 형식을 따른 불상으로, 방형의 남성화된 얼굴과 블록화된 신체, 밋밋하고 빈약해진 양감과 볼륨감의 표현, 보살상의 정제된 보관과 영락장식 표현 등 조선 후기 불상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성기에 의해 1629년이라는 확실한 조성시기를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상의 기준작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불상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사찰문화재』(문화재청·대한불교조계종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3)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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