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당리구황산 추산봉 중턱에 위치한 운선암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여래입상과 마애여래좌상 등 2구의 불상으로, 2000년 6월 23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운선암에는 이들 여래상 외에도 조선 말기에 조성된 석불입상과 최근에 만든 보살입상 등이 남아 있다.
마애여래입상의 높이는 251㎝로, 운선암 뒤편 추산봉 중턱에 있는 바윗면에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바윗면을 따라 앞으로 기울어지게 조각되어 있는데, 얼굴은 고부조(高浮彫)로 조각되었으나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차 평면적이고 간결하게 처리되었다. 얼굴의 형태는 장방형으로, 좁은 이마에는 작은 백호공이 뚫려 있다. 눈썹과 눈은 가늘고 긴 형태로 반개하였으며, 코는 낮게 처리되었다. 입은 거의 일직선으로 작고 얇게 조각되었다. 얼굴의 세부표현은 논산 개태사 석조삼존불상과 당진 안국사지 삼존불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간직하고 있으나, 기운이 빠져 섬약해 보이고 경직된 얼굴 표정 등에서 차이가 난다.
머리는 소발이고, 높이 솟은 육계는 너비가 넓어 머리의 너비와 거의 같게 조각되었다. 목은 긴 편이나 투박하게 처리되었다. 삼도(三道)는 따로 조각하지 않고 목과 가슴의 경계선을 하나로 간략하게 조각하였다. 수인은 오른손은 길게 밑으로 내려뜨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고 있는데, 팔의 길이가 굉장히 길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 오른손의 표현에서 주목되는 점은 손바닥에 조각된 이중의 원형문(圓形文)인데, 아마도 법륜(法輪)이나 보주로 생각된다. 왼손은 내장(內掌)하여 가슴에 대고 있다.
대의는 통견으로 가운데가 넓고 깊게 파여 가슴이 훤히 노출되었다. U형으로 늘어진 옷자락을 따라 굵고 넓은 옷단을 조각하였다. 옷주름 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리는데 아래로 내려올수록 기울기가 줄어들어 점차 U형에 가깝게 변화한다. 비스듬한 옷자락 밑으로 세로선 위주의 하의(下衣) 표현이 보인다. 대체로 옷주름 선은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형식화가 뚜렷하다. 고려시대에 많이 나타나는 복판(複辦)의 연화대좌 위에 표현된 두 발은 옆으로 일직선이 되도록 벌리고 있는데, 이는 제천 덕주사(德周寺) 마애불입상 등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일직선으로 조각된 발의 표현은 불합리한 신체표현으로 보인다.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221㎝로, 운선암 일로당(逸老堂) 옆 바윗면에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얼굴은 둥글고 통통하지만 통일신라 불상의 얼굴에 보이는 긴장감 있는 팽팽함과 탄력감은 사라졌다. 이마에는 커다란 백호공이 남아 있고, 눈썹과 눈은 가늘고 긴 형태이며, 코와 입은 마모로 인해 뚜렷하지 않다. 머리와 얼굴의 구분선은 이중의 둥근 삼산형(三山形)으로 조각한 것이 특이하다. 머리는 소발로 육계가 상당히 높게 솟아 있다. 목에 조각된 삼도(三道)는 U형으로 형식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신체는 비교적 당당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둥근 어깨와 넓게 자리 잡은 무릎의 위치는 이 불상이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대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옷주름 선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오고 있다. 이 옷주름 선은 거의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조각되어 있으나 획일적인 형태가 아니라 불규칙적인 형태를 보이며, 복부에 조각된 기다란 타원형의 주름이 특징적이다.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변형으로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살며시 내려놓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려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다. 대좌는 만개한 연화대좌로 꽃잎 밑으로 구불구불한 줄기까지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꽃잎 가운데는 연심(蓮心)이 보인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이루어졌는데, 일반적인 광배의 형태에 비해 넓적하게 변화된 모습이다. 또한, 이중의 광배 구획선 안을 사선으로 조각한 것이 주목된다.
마애여래입상은 형식면에서 옷주름의 뚜렷한 형식화와 경직된 얼굴 표정, 불합리한 신체 표현과 비례감 등에서 고려 중기 이후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마애여래상은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면서도 고려시대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마애불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