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천제석천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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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청곡사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
진주 청곡사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
조각
개념
우리나라 석탑, 부도, 사리장엄구, 금강령 등의 불교미술품에 한 쌍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호법신. 범석상 · 브라마 · 인드라 · 대범천 · 대범천왕 · 범왕 · 사바세계주 · 석제환인다라 · 석가제바인다라 · 신들의 왕.
이칭
이칭
범석상(梵釋像), 브라마, 인드라, 대범천(大梵天), 대범천왕(大梵天王), 범왕(梵王), 사바세계주(裟婆世界主),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신(神)들의 왕(王)
내용 요약

범천제석천상은 우리나라 석탑·부도·사리장엄구·금강령 등의 불교미술품에 한 쌍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호법신이다. 초기 불교미술에서 범천은 검소한 수행자, 제석천은 호화로운 왕공의 모습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8세기 중엽에 조성되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 있는 원형 주실 안의 상들이 그것이다. 불화에서 범천과 제석천은 한 쌍으로 많이 그려졌다. 조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 의좌상으로 다수 만들어져 전각 내 좌·우측에 봉안되었다. 대표적으로 순천 송광사 응진당의 소조상, 해남 대흥사 응진당의 목조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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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리나라 석탑, 부도, 사리장엄구, 금강령 등의 불교미술품에 한 쌍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호법신. 범석상 · 브라마 · 인드라 · 대범천 · 대범천왕 · 범왕 · 사바세계주 · 석제환인다라 · 석가제바인다라 · 신들의 왕.
내용

고대 인도의 주1에서 세계창조의 신으로 신앙되던 주2과, 신들의 왕으로 숭배되던 제석천은 불교에 수용된 후 각종 경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돕거나 보호하는 역할을 하며 함께 등장하게 되었다.

초기 불교미술에서 범천은 검소한 수행자의 모습으로, 제석천은 호화로운 왕공(王公)의 모습으로 대비를 이루며 본존의 좌우에 표현되어 불삼존상 형식의 시원이 되었다.

범천과 제석천은 동아시아에서 호국(護國)과 관련된 불교 신중신앙의 중심에 있었다. 통일신라 왕실이 706년(성덕왕 5) 발원 · 조성한 전 황복사지(傳 皇福寺址) 삼층석탑 금동사리외함 명문에 나오는 ‘범석사왕(梵釋四王)’은 범천 · 제석천과 사천왕을 뜻하며, 호법(護法)과 호국의 선신(善神)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특히 제석천은 전통적인 천신(天神) 숭배와 결부되어 지속적으로 중요시되었다. 7세기 전반 백제 무왕(武王)이 익산에 세운 제석정사(帝釋精舍)와 신라의 진평왕(眞平王)이 궁궐에 지은 내제석궁(內帝釋宮), 고려시대 태조가 개경에 창건한 내 · 외제석원(內 · 外帝釋院), 각종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개최한 주3은 국가적 차원에서 제석천 신앙이 중시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통일신라 8세기 중엽에 조성된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 있는 원형(圓形) 주실(主室) 안의 상들이다. 본존상을 향하여 범천상은 왼쪽에, 제석천상은 오른쪽에 위치한다. 두 상 모두 오른팔을 굽혀 불자(拂子)를 든 자세인데, 위가 넓은 타원형의 두광(頭光)을 두르고 몸에 장신구를 걸쳤으며 발밑에는 타원형의 대좌를 깔고 서 있다.

그러나 범천상은 몸에 가사(袈裟)같은 옷을 입고 왼손을 내려 정병(淨甁)을 쥔 반면, 제석천상은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배 부근에 댄 왼손바닥 위에 금강저(金剛杵)를 올려놓은 모습이다. 이러한 형상 자체는 7세기 중엽 한역된 밀교경전인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권(卷)3 반야화상법(般若畵像法)의 범천상과 제석천상에 대한 형상 규정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몇 예를 제외하면 중국에는 범천상과 제석천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석굴암 상은 도상의 정확성과 높은 완성도에서 8세기 동아시아 범천상과 제석천상의 기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와 고려 초기에는 범천상과 제석천상이 주로 삼층석탑의 1층 탑신이나 상층기단, 부도(승탑)의 탑신 표면에 새겨졌다. 석탑의 예로는 전남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강원 금강산 장연사 3층석탑, 경북 안동 임하동 3층석탑 등이, 부도 중에는 전남 곡성 태안사 적인선사조륜청정탑(861년), 경북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883년), 충남 보령 보원국사법인선사보승탑(975년) 등이 있다.

도상적으로 석탑의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주로 석굴암 상의 전통을 계승한 반면, 부도의 상들은 8세기 중반 이후 중국당(唐)에서 새롭게 수용된, 높은 보관을 쓰고 소매가 긴 도포를 입은 중국화된 옷차림의 범천상과 제석천상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일본에서 유행하였던 밀교계통의 다면다비(多面多臂)형 범천상과 제석천상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높은 보관과 도포를 착용한 범천상과 제석천상의 도상은 고려시대의 미술로 이어져서 불화뿐만 아니라 주4 등의 불교공예품에도 여럿 조성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신중도(神衆圖)를 비롯한 불화에 범천과 제석천이 한 쌍으로 많이 그려졌으나, 조각으로는 임진왜란 이후 의좌상(倚坐像)으로 다수 만들어져 응진전(應眞殿)이나 나한전(羅漢殿) 등의 전각 내 좌우측에 봉안되었다.

지금까지 제작연도가 확인된 예로는 전남 순천 송광사 응진당의 소조상(1624년), 전남 여수 흥국사 전시관의 목조상(1655년), 고흥 능가사 응진당의 목조상(1685년), 해남 대흥사 응진당의 목조상(1701년), 전남 영광 불갑사 팔상전의 목조상(1706년) 등이 있다.

참고문헌

『토함산 석굴』(문명대, 한언출판사, 2000)
「통일신라 말 고려 초 부도의 범천·제석천상 도상 연구」(허형욱,『신라문물연구』창간호, 국립경주박물관, 2007)
「나말여초 승탑 탑신 신장상 연구」(강삼혜,『미술사학연구』252, 2006)
「석굴암 범천·제석천상 도상의 기원과 성립」(허형욱, 『미술사학연구』246·247, 2005)
「석굴암 불교조각의 도상적 고찰」(강우방,『미술자료』56, 1995)
「석굴암 불상군의 명칭과 양식에 관하여」(김리나,『정신문화연구』48, 15-3, 1992)
주석
주1

불교에 앞서 고대 인도에서 경전인 베다의 신앙을 중심으로 발달한 종교. 우주의 본체 곧 범천(梵天)을 중심으로 하여 희생을 중요시하며 난행고행과 조행(操行) 결백을 으뜸으로 삼는다. 우리말샘

주2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우두머리. 제석천(帝釋天)과 함께 부처를 좌우에서 모시는 불법 수호의 신이다. 우리말샘

주3

불교에서 제석천 신앙을 대상으로 한 의식. 고려 초의 승려 홍경이 중국에서 대장경을 가져와 제석원(帝釋院)에 모시고 제석 도량을 열었으며, 이후 궁중에서 자주 제석 도량이 열렸다. 우리말샘

주4

밀교에서, 수법(修法)할 때에 여러 부처를 경각시키거나 기쁘게 하기 위하여 울리는 방울.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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