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와 민간 다수가 발원하였고 당시 최고의 화승으로 꼽히는 의겸의 주도로 그려졌다. 삼베바탕에 채색되었고 총 6폭으로 구성되었으며 현존하는 조선후기 불화 중 제작시기가 가장 빠른 동시에 최고의 화격을 지닌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수 흥국사 십육나한도는 1723년 응진당 석가설법도, 관음보살도와 함께 제작되었다. 현재 응진당 석가설법도는 소재를 파악할 수 없으며, 십육나한도와 관음보살도만이 사찰에 남아 있다. 십육나한도는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나 열반에 들기를 미룬 채 이 땅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수기를 받은 16인의 불제자들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흥국사 십육나한도 6폭은 응진전의 정면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 세 폭씩 봉안되었으며 좌측에는 제1존자를 비롯한 홀수 존자가, 우측에는 제2존자를 비롯한 짝수 존자가 대칭을 이루면서 배치되었다. 또한 제1, 2폭의 화면의 가장 안쪽에는 가섭과 아난이, 제5, 6폭의 가장 바깥쪽에는 제석과 명부사자, 그리고 신장이 함께 그려져 있다.
십육나한은 기암 괴석 등의 산수를 배경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선정에 들어있거나 웅크리고 앉아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 등 자유로운 자세로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그 밖에 시자 등의 권속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불교 경전에 나한의 형상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대체로 선행 작품을 참고하여 그려지는데, 여수 흥국사본은 명대에 제작된 백과사전인『삼재도회』에 수록된 불조도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려졌다. 『삼재도회』는 17세기 경 조선에 유입되어 사대부들 사이에서 일부 활용되었으며 불화의 경우는 흥국사 십육나한도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화승 의겸의 주도로 총 10여 명이 동참하여 그렸으며, 나한의 표정과 필선, 문양, 그리고 수묵 산수 등에서 뛰어난 기량이 엿보인다. 현재는 사찰 내 의승수군유물기념관 2층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여수 흥국사 십육나한도는 조선후기 십육나한도 중 제작시기가 가장 이른 작품인 동시에 이후 작품들의 기준작이 되었으며 18세기 대표적인 화승 의겸의 수작 중 하나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