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阿羅漢果)의 경지에 이른 16명의 불제자 나한의 모습을 그린 고려시대의 불화이다. 십육나한은 석가모니로부터 미륵이 올 때까지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수기(授記: 부처가 내려준 소임)를 받은 16명의 아라한으로, 나한의 성격이 가장 집약된 구성이라 할 수 있으며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密多羅所說法住記)』에 근거한다. 이 그림들은 고려시대에 그려진 십육나한도 중 일부로 비단 바탕에 수묵 담채로 그려져 있다. 한 폭은 십육나한 중 제7 가리가존자도(迦理迦尊者圖)이며, 다른 한 폭은 제15 아대다존자도(阿代多尊者圖)이다.
고려 십육나한도의 제7 가리가존자도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나한의 모습을 중심으로 그 옆에 시중을 드는 시자를 함께 표현한 그림이다. 의자 등받이 부분에만 붉은색을 사용하였으며 그 외에는 수묵으로 그렸고 일체의 배경을 생략한 채 나한의 풍모 위주로 그렸다. 그림의 하단에는 제작 시기와 발원 목적, 발원 주체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이 그림이 고려 1236년(고종 23)에 김의인(金義仁)이 주도하여 국토의 태평과 국왕의 장수 등을 기원하며 제작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기존에는 1235년에서 1236년까지의 나한불사에서 오백나한도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십육나한도의 화기 내용이 오백나한도와 거의 동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에 두 불화가 함께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15 아대다존자도의 상단에는 ‘아대다’라는 존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래 『법주기(法注記)』에 의하면 십육나한 중 제15존자는 ‘아씨다(阿氏多)’ 이므로 이 존명을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늙은 비구형상의 나한이 등받이가 있는 의자 위에 앉아 긴 석장을 두 손으로 잡고 기댄 채 화면 우측의 시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시자들은 나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당히 작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위계를 명확히 구별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한 앞쪽의 시자는 경책을 들고 있으며 의자 옆에 서 있는 시자는 연화가지로 보이는 지물을 가지고 있다. 존자의 의자 아래쪽에는 ‘혜한(惠閒)’이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는데 이는 이 그림을 그린 화사로 짐작된다. 그 외의 화기는 남아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와 세밀한 필선, 사실적인 존상 묘사 등이 돋보인다. 이 그림은 제7 가리가존자도는 물론 오백나한도와 비교해도 화면 구성방식 방식, 그리고 채색의 운용과 문양 등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15 아대다존자도는 두 나한도와 동일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13세기의 나한도상에 대한 인식을 계승한 14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동아시아의 십육나한도가 대부분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존상을 표현한 것과 달리 일체의 배경을 생략한 채 주제인 나한의 모습을 부각하여 그린 점이 특징적이다.
우리나라의 나한도 중에서 총 16폭으로 구성된 나한도는 매우 드문 사례인데, 13~14세기 고려의 나한도 제작 경향과 당시 십육나한 신앙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