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제는 1960년대 한국 연극 극단에 널리 수용되었다. 1960년대는 ‘실험극장’(1960. 10)을 선두로 하여 ‘민중극장’(1963. 1), ‘산하’(1963. 9), ‘가교’(1965. 3), ‘광장’(1966. 3), ‘자유극장’(1966. 4), ‘여인극장’(1966. 10) 등의 동인제 극단들이 새로 결성되었고, 활발한 활동으로 극계를 이끌어갔다. 동인제 극단들은 1950년대와는 달리 직업 극단으로서의 체제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 동인제 극단의 구성원들 중 상당수가 1950년대와는 달리 연극을 직업으로 하여 극단 활동에 몰두하였기 때문에 연극계에 새로운 토대를 형성하는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특히 극단 실험극장은 1960년대의 가장 대표적인 극단으로 부상하였다. 실험극장은 ‘연구와 실험’이라는 소극장운동의 기본적 목표는 동일하지만 직업극단으로서의 출발과 운영 방향에서 차이를 갖는다. ‘작품의 무대화’를 중심으로 한 ‘정기적인 공연 활동’을 기본적인 운영 방향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동인제 극단의 출범과 연극운동은 급격한 연극계의 세대교체를 뜻하는 것이었다. 연극계에 대한 새로운 이념 또는 접근 방법의 정립을 재촉했고, 세계 연극 속의 한국 연극이라는 인식을 촉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