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반남 고분군 ( )

나주 반남 고분군 전경
나주 반남 고분군 전경
고대사
유적
문화재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옹관분구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사적.
정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삼국시대 옹관분구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사적.
개설

201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해발 98.7m∼95.7m의 두 개 봉우리가 말안장처럼 생긴 자미산(자마산성이 주1을 중심으로 동쪽구릉에 있는 14기의 덕산리 고분군, 북동쪽 신촌리에 있는 7기의 신촌리 고분군, 서쪽능선에 있는 12기의 대안리 고분군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신촌리 고분군이 지역적으로 넓게 산재하고 있다. 이들 고분의 평면은 원형, 방형, 장방형, 사다리꼴 등으로 다양하지만 원형이 많으며, 고분의 주변으로는 주2를 만든 예가 많다.

역사적 변천

신촌리 9호분은 다니이 사이이치[谷井濟一]가 1917년에 특별조사의 일환으로 발굴하여 중요성이 인정된 후 1963년 1월 21일 나주 대안리 고분군, 나주 신촌리 고분군, 나주 덕산리 고분군은 각각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이들 고분군의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고 인접지역 고분군을 통합하여 2011년 사적 나주 반남 고분군으로 재지정하였다.

내용과 특징

사적 나주 반남 고분군은 대안리4호분처럼 횡혈식석실을 매장주체로 쓴 예도 있으나 대체로는 대형 독[甕]을 매장의 주체부로 사용하고 있는 점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옹을 매장 주체로 사용한 무덤은 대안리9호분이나 신촌리9호분처럼 하나의 분구(墳丘) 안에 여러 개의 옹관을 안치한 점에서 다른 곳 무덤과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신촌리9호분에서는 옹관이 시기적인 차이를 두고 매장되었음이 밝혀졌고, 분구의 주변에 원통형토기를 세차례 심은 것도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들 가운데에는 신촌리9호분 을관에는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보, 1997년 지정), 금동모, 용봉문대도, 대궁, 금동신발 등이 부장되어 있었다.

의의와 평가

나주 반남 고분군은 1분구에 여러 주검을 옹에 넣어서 매장한 다장묘(多葬墓)로 삼국시대 장법에서는 매우 이질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어서, 백제영역화 전단계에 지역마다 존재하였던 지역세력의 동향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특히 문헌자료가 빈약한 삼국시대 백제의 지방지배방식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나주 덕산리 고분군』(전남대학교박물관․나주시, 2002)
『나주 신촌리9호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나주반남고분군종합조사보고서』(국립광주박물관․전라남도나주군, 1988)
「나주 반남면 대안리5호 백제석실분 발굴조사보고」(최몽룡․이청규․노혁진, 『문화재』제12호, 문화재관리국, 1979)
「10 나주군」(조선총독부,『1917년도조선고적조사보고』, 1920)
「羅州潘南面新村里第9號墳發掘調査記錄-主として小川敬吉氏手記の紹介-」(有光敎一,『朝鮮學報』94, 1980)
「羅州潘南面古墳群-梅原考古資料による谷井濟一氏發掘遺物の硏究-」(穴澤和光․馬目順一,『古代學硏究』70, 古代學硏究會, 1973)
주석
주1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에 있는 산. 높이는 97미터. 우리말샘

주2

무덤 주위를 둘러 판 도랑. 우리말샘

집필자
박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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