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高麗史)』병지(兵志) ‘별호제반조(別號諸班條)’에, 신기(神騎)·신보(神步)·정노(精弩)·석투(石投)·대각(大角)·철수(鐵水)·강노(剛弩)·경궁(梗弓)·사궁(射弓)·발화(發火) 등의 여러 병종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도탕(跳蕩)이 어떠한 부대였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당서(唐書)』백관지(百官志)에 “시석미교 함적돌중 적인이패자 왈도탕(矢石未交 陷敵突衆 敵因而敗者 曰跳盪)”이라는 사료를 들어 일종의 돌격대로 보고 있다.『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에는 “칙도탕위기병야(則跳盪爲騎兵也)”라고 하여 도탕을 기병이라고 하고 있고,『무경총요(武經總要)』에는 “고유도탕좌우우후 금위지선봉(古有跳盪左右虞侯 今謂之先鋒)”이라고 하여 선봉대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중국 측 사료의 내용을 참고하여 고려시대의 도탕도 기병으로 구성된 돌격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도탕은 5군(軍)의 전·후·중·좌·우군 가운데 도탕은 신기·경궁·정노·신보·석투·대각·철수·발화·강노와 함께 중군에 편성되었으며, 도탕의 지휘관으로 도탕도령(跳蕩都領)과 도탕지유(跳蕩指諭)가 편제되어 있었다. 도령은 도탕군 전체를 거느리는 총지휘관이었으며, 지유는 도령을 보좌하여 부대를 통솔하는 부지휘관에 해당되었다. 도탕도령과 도탕지유가 도탕군을 이끌고 전투에서 선봉대로 적진을 교란하는 임무를 맡았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