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高麗史)』「병지(兵志)」병제(兵制) 정종 11년 5월조를 보면, 1,000명으로 구성된 단위부대인 1령(領)에 교위 20명이 편성되어 있었다. 이로 미루어보아 교위는 50명을 지휘하는 단위부대의 지휘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교위는 장군방(將軍房), 낭장방(郎將房), 산원방(散員房)처럼 자신들의 의사를 합좌하여 대표하는 교위방을 갖고 있었다. 교위방은 무신에 관련된 합좌기구 중 가장 등급이 낮은 기구였다.
고려의 중앙군은 총 45령으로 편제되었는데, 45령에 총 900명의 교위가 있었다. 이들이 교위방을 어떻게 운영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900명에 달하는 교위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에 각 령의 교위들 대표가 모여 의견을 취합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