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이이 유적 ( )

파주 이이선생 묘역
파주 이이선생 묘역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 학자 이이 관련 생활유적. 서원 · 묘역.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파주 이이 유적(坡州 李珥 遺蹟)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2013년 02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산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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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 학자 이이 관련 생활유적. 서원 · 묘역.
역사적 변천

201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파주의 율곡은 이이의 아버지인 이원수의 본가가 있는 곳이다.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의 본가인 강릉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6세 때 본가가 있는 율곡으로 왔다.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3세부터 29세까지 9번의 과거에서 9번 장원급제를 하였다. 어머니 문상(問喪)기간과 금강산에서 수도한 4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에서 학문을 닦았고 관직을 마친 후에도 돌아와 49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거주하였다.

자운서원은 이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사후 31년이 되는 1615년(광해군 7)에 세워졌다. 1650년(효종 1)에 국가로부터 ‘자운(紫雲)’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고, 1713년(숙종 39)에는 이이의 후학인 김장생(金長生)과 박세채(朴世采)를 함께 추향(追享)하였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폐쇄되어 묘정비(廟庭碑: 서원의 내력을 기록한 비)만 남아 있다가 1970년 유림들의 기금과 국가지원으로 사당과 강당, 동재, 서재, 협문, 내삼문, 외삼문 등을 갖추게 되었다.

내용

파주 이이 유적에는 자운서원(紫雲書院), 이이와 그의 가족묘, 자운서원묘정비(紫雲書院廟庭碑), 이이선생신도비(李珥先生新道碑), 율곡기념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자운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로, 외삼문인 자운문(紫雲門), 협문(夾門), 동재인 입지재(立志齋), 서재인 수양재(修養齋), 강당인 강인당(講仁堂) 등 교육 공간을 전면에 배치하고, 그 뒤로 삼문(三門)으로 경계를 나눈 후 높은 대지 위에 사당인 문성사(文成祠)를 배치하였다. 사당 내부에는 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김장생과 박세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매년 봄 · 가을에 제향하고 있다.

2012년에 자운서원 위치 고증을 위한 표본시굴조사 중 문성사 축대 전면에서 창건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대석과 ‘강희이십(칠)년(康熙二十(七)年)’이라는 명문(銘文)이 있는 기와가 출토되었다. 명문의 연호로 보아 1681년(숙종 7)에서 1688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자운서원의 위치와 조성시기를 고증할 수 있다.

자운서원의 사당 앞 삼문 왼쪽에 있는 자운서원묘정비는 이이의 덕행을 추모하고 자운서원의 건립 내력을 기록한 화강암 비석으로, 1683년(숙종 9)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글씨는 김수증(金壽增)이 예서체로 썼다.

자운서원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을 때, 오른쪽 산기슭으로 여현문(如見門)이 보인다. 이 문 안쪽, 자운산으로도 불리는 사방산(해발 227m)의 남쪽 자락에 이이묘와 신사임당묘를 비롯한 13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중심 묘역의 가장 높은 곳에는 이이와 부인 곡산노씨의 묘, 그 아래로 이이의 맏형 이선(李璿)과 그의 부인 곽씨의 합장묘가 있다. 그 아래로 이이의 부모인 이원수(李元秀)와 신사임당(申師任堂)의 합장묘가 있고 가장 아래쪽에는 이이의 맏아들 이경림(李景臨)의 묘가 있다.

이이묘는 부인 곡산노씨묘와 위 · 아래로 인접해 있다. 봉분 정면에 상석이 있고 오른쪽에 묘비가 있으며, 그 좌우로 망주석과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이이의 부모 묘소에도 중앙에 묘비와 상석, 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로 키 작은 문인석이 자리하고 있다. 가족 묘소는 이이의 명성에 비해 소박하고 평범한 묘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이선생신도비는 높이 223㎝, 폭 109㎝, 두께 39㎝ 크기로, 유적지 입구에서 가까운 왼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1631년(인조 9) 4월에 세워진 대리석 비석으로 앞뒷면에 이이의 일대기가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이항복(李恒福)이 짓고, 글씨는 신익성(申翊聖)이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율곡기념관은 1986년 건립된 팔각정형태의 건물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이이 관련 자료의 전시공간과 체험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약 10㎞ 떨어진 곳에는 이이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제자들과 함께 시와 학문을 논했다고 하는 화석정이 있다. 화석정은 197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경세가인 이이 관련 유적을 대표하는 곳으로, 그를 배향한 자운서원과 그의 가족묘역이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한 인물에서 비롯된 문화유산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공간이다.

참고문헌

『경기도문화재총람: 도지정편 1-3』(경기도, 2005)
국가유산청(www.khs.go.kr)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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