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보유적 제35호. 『성천읍지』에 의하면 방선문은 1670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1727년에 개건(改建)되었다고 한다. 방선문이 세워져 있던 성천객사는 성천군 입구인 비류강변에 자리하며, 주변 경치가 뛰어나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고려시대인 1343년에 건립된 성천객사는 1613년 화재로 소실되어 1616년에 다시 세워졌고, 1766년에도 불에 타 1768년에 다시 지어졌다. 성천객사는 중심건물인 동명관(東明館)을 비롯하여 강선루(降仙樓), 통선관(通仙觀), 유선관(留仙館), 학선관 등의 건물 10여 동이 세워진, 337칸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였다. 일반적으로 객사는 읍의 중심부에 위치하지만 성천객사는 밀양객사와 마찬가지로 강 주변 아름다운 곳에 주변경관과 어울리도록 지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객사 건축으로 손꼽혔다. 현재는 문루인 방선문(訪仙門)만 동명관 터에서 동쪽으로 약 700m 가량 떨어진 성천읍의 한가운데에 홀로 남아 있다.
방선문은 송객정(送客亭) 또는 망경루(望京樓)라고도 불렸다. 정면 3칸(10.6m), 측면 2칸(5.65m)에 익공형식, 겹처마 팔작지붕의 2층 누각 건물이다. 기둥은 모두 배흘림이 있는 원형기둥이며 2층에는 바닥에 널마루를 깔았으며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둘렀다. 가구는 대들보와 종보를 사용한 이중량 형식이며 도리는 모두 5개를 사용하였다. 지붕은 부연이 갖추어진 겹처마 형식으로 팔작지붕으로 마감하였다. 기둥 위에는 공포를 올리고 기둥 사이에는 화반을 배열하였다. 천장은 2층만 우물천장으로 반자는 연화문으로 꾸며져 있다. 공포형식은 외2출목 내1출목의 출목식 익공으로 외부의 초제공은 용머리, 2·3제공은 연봉으로 장식한 앙서, 4제공은 연봉장식 수서, 5제공은 봉황머리로 장식하였다. 내부의 초제공은 봉황머리로, 나머지 제공은 연봉으로 장식하였다. 화반은 청색과 황색의 귀면과 꽃이 화려하게 꽂힌 꽃병 모양을 투각하였다.
방선문이 다른 문루들과 구별되는 점은 공포에서 가장 높은 단수인 4익공 두공을 쓰면서 공포 첫 단에 모두 용머리 조각을 붙이고 우물천장으로 아담하게 꾸몄다는 점과 화반의 다양한 조각 등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성천객사를 구성했던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어 웅장했던 성천객사의 모습을 추정하는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객사 건축 연구에서도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