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화회는 서양화 교육 및 전람회 개최를 위해 1919년 11월 1일 경성시내의 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학생들 중 박영래(朴榮來)ㆍ강진구(姜振九)ㆍ김창섭(金昌燮)ㆍ안석주(安碩柱)ㆍ이제창(李濟昶)ㆍ장발(張勃) 등이 발기하여 조직된 학생미술단체이다. 창립 당시 화회 회원은 12여 명이었으며, 이후 구본웅(具本雄)ㆍ홍재유(洪在裕)ㆍ이재상(李在祥)이 들어왔다. 고문 및 선생으로 고희동(高羲東)ㆍ야마모토 바이가이(山本梅涯)ㆍ타카키 하이스이(高木背水)ㆍ마루노 유타카(丸野豊)가 참여했다.
11월 1일 고려화회를 개최한 이후 11월 21일부터 실기교육이 시작되었다. 장소는 종로 중앙청년회였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수채화와 서양화 강습을 실시했는데, 야마모토 바이가이가 수채화를, 마루노 유카타가 유화교육을 담당했다. 고려화회가 경성시내의 고보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연유는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고희동이 여러 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하면서 만난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창립회원인 이제창, 안석주, 장발 등이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떠나면서 이 단체는 오래가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비록 단명했지만 1910년대 조선인에 의해 조직된 최초의 서양화 교육단체로서의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