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초상 ( )

회화
작품
1898~1899년에 휴벗 보스가 유화로 그린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초상화.
정의
1898~1899년에 휴벗 보스가 유화로 그린 대한제국기 고종황제의 초상화.
개설

캔버스에 유채. 세로 199㎝, 가로 92㎝. 개인 소장. 이 작품은 서양인이 조선의 왕을 그린 최초의 유화 초상으로, 장막이 드리워진 배경을 뒤로 하고 궁궐의 마루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을 그린 등신대의 전신입상이다. 양식 면에서는 사실적 재현에 중점을 두었으나 고종의 나이에 비해 다소 젊게 묘사되었다. 고종은 황룡포를 입고 있어 대한제국 선포 이후 왕에서 황제가 된 고종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용

네덜란드인이었던 휴벗 보스(Hubert Vos)는 브뤼셀의 왕립미술학교(Académie Royale de Bruxelles)를 거쳐 파리의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 1845~1924)에게 미술수업을 받았다. 1885년부터 1892년까지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특히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에 네덜란드 왕실의 커미셔너로 참가했다가 미국으로 귀화하였다. 당시 보스는 박람회의 인종관을 보고 인종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여러 인종학 관계 서적들을 찾아보다가 인종의 본보기로 수록된 자료들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을 알고 이들의 표준형을 수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사라져가는 순수혈통을 기록하려는 목적으로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자바 등을 여행하면서 표준형이라 생각되는 인물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1898년 보스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광산사업을 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와 있던 미국인 헌트(Leigh S. H. Hunt)의 소개를 받아서였다. 그는 1898년부터 1899년 봄까지 미국 공사관에 머물면서 러시아 공사의 소개로 상층부 관리들의 만찬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민상호(閔商鎬)의 초상을 그려준 것이 계기가 되어 고종황제와 황태자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다. 이때 보스는 왕실의 허락을 얻어 고종의 어진 두 본을 그린 후 한 작품은 조선왕실에 남겨두고 또 다른 작품은 1900년 파리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하여 가지고 갔다.

1899년 7월 12일 『황성신문』에는 “월전(月前)에 미국 화사(畵師) 보스씨가 미공사관에 왔는데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스는 동양 여행을 하면서 여러 가지 풍속을 그려 내년 파리박람회에 낼 계획이라고 한다. 또 보스가 어진과 예진 양본(兩本)을 그리고 그 공으로 금전 일만원을 받아 일전(日前)에 떠났다고 한다”고 보도되었다. 보스는 1900년 6월 파리만국박람회 인류관에 고종과 민상호의 초상화를 조선 인종의 대표적 표준형으로 출품하였다. 이 작품들은 같은 해 12월 워싱턴의 코코란스 갤러리(Corcoran's Gallery, 현재 스미소니안 박물관 소속), 1902년 뉴욕 유니언 리그 클럽(The Union League Club)에서도 전시가 되었다.

보스가 그린 두 본의 고종초상 중 조선왕실에 남겨두었던 작품은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작품은 보스가 파리박람회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1890년대 한국에서는 서양인에 의해 서양화가 직접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보스의 고종초상은 현존하는 작품 중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조선왕의 초상이자 최초의 서양화이다. 이 작품은 한국 근대기 사실주의적 시각의 도입과 이로 인한 초상화 전통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황룡포를 입은 황제로서의 고종에 대한 기록으로써 대한제국기 고종의 황제 등극과 어진 전통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구한말 미국인화가 보스가 그린 고종황제초상화 특별전시』 (국립현대미술관, 1982)
「고종황제의 초상 : 휴벗 보스의 고종초상을 중심으로」(권행가,『근대미술연구』, 국립현대미술관, 2005)
「화진수금」(『황성신문』, 189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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