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

부채를 든 자화상/고희동
부채를 든 자화상/고희동
회화
개념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전통미술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서양미술사조. 인상파ㆍ임프레셔니즘.
이칭
이칭
인상파, 임프레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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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인상주의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전통미술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서양미술사조이다. 인상파 또는 임프레셔니즘이라고도 한다. 1874년 파리에서 열린 무명예술가협회전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미술운동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10년대 일본을 통해 아카데미즘과 절충된 인상주의를 1세대 서양화가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이 처음 받아들였다. 1930년대 후반부터 오지호와 김주경은 인상주의를 과거의 사조로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진정한 미로서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인상주의를 한국의 자연과 빛을 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언어로 파악했다.

정의
일제강점기 일본을 통해 유입되어, 전통미술의 근대화에 영향을 준 서양미술사조. 인상파ㆍ임프레셔니즘.
인상주의의 연원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1874년 파리에서 개최된 무명예술가협회전에 참여했던 일군의 작가들의 새로운 미술운동을 일컫는다. 공식적으로는 1886년 제8회 인상주의전람회로 미술운동은 끝났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은 1890년대 이후 후기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로 이어졌을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즘과 절충된 양식으로 전 유럽과 아시아로 파급되었다.

한국 인상주의의 유입

1910년대에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양화를 받아들였는데, 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들인 고희동(高羲東), 김관호(金觀鎬)가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를 통해, 그리고 나혜석(羅蕙錫)이 도쿄여자미술학교[東京女子美術學校]를 통해 처음 받아들인 것도 아카데미즘과 절충된 인상주의였다.

일본에 인상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18661924)에 의해서이다. 1884년 파리로 유학을 간 구로다 세이키는 화상(畵商)인 하야시 타다마사[林忠正, 18531906]의 소개로 라파엘 콜랭(Raphael Collin, 1850~1916)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라파엘 콜랭은 아카데미 전통을 따르면서도 밝은 색상, 일상적인 장면에서 찾은 소재 등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화가였다. 라파엘 콜랭에게 서양화를 배운 구로다 세이키는 귀국 후 1896년에 도쿄미술학교 양화과의 교수가 되면서 프랑스 아카데미 교육을 기본으로 하되 야외 사생을 중시하는 체제를 확립하였다.

따라서 한국 근대기 서양화 1세대는 도쿄미술학교를 통해 이러한 인상주의와 아카데미의 절충양식을 받아들였다. 고희동의 「부채를 든 자화상」(191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나 김관호의 「해질 녘[夕暮]」(1916, 도쿄예술대학교 소장)에서는 사실적 재현에 치중하면서도 파스텔 톤의 색조나 석양의 빛 묘사 등 빛에 의한 색의 반영을 전달하려는 시도가 보인다.

인상주의가 현대미술의 사조로서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초부터이다. 주로 도쿄 유학시절에 문예잡지인 『묘조[明星]』, 『사라카바[白樺]』의 영향을 받은 문인이나 화가 등을 중심으로 현대미술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었다. 용어는 임프레셔니즘, 인상파, 인상주의 등이 혼용되었다.

김찬영은 「현대예술의 대안(對岸)에서 : 회화에 표현된 ‘포스트임프레셔니즘’과 ‘큐비즘’」(『창조』8호, 1921.1)에서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를 인상주의의 선구로 보았고 인상주의 1회전과 2회전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 인상주의 명칭의 유래 등에 대해 소개하였다. 본래 이 글은 후기인상주의와 입체주의가 이성의 지배를 넘어선 주관의 표현이자 자아 해방의 표현, 즉 진정한 현대예술의 방향이라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인상주의는 후기인상주의의 선구로서 간략히 다루어졌을 뿐이다.

이처럼 인상주의에 대한 소개가 그 자체보다는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간략히 다루어지는 현상은 1930년대 전반까지 지속되었다. 이는 다이쇼(大正)시대 이후 일본 미술계의 관심이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후기인상주의 이후의 전위미술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었던 시기에 한국의 화가들이 인상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1930년대 후반까지 사조로서의 인상주의에 대한 본격적 논의나 검토가 진행되기보다는 현대미술의 선구 정도로만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1932년에 나혜석은 인상파에 대해 “명소(名所)나 귀인(貴人)의 얼굴이 아니라 산천, 시가(市街), 공장, 비천한 술집의 여인 등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냈기 때문에 비평가들의 공격을 받은 화파”라고 소개하였다. 나혜석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동 · 서양화단에서 일상의 풍경, 일상의 풍속을 그리는 것이 근대회화라는 인식은 인상주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인상주의의 토착화

인상주의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양식적으로도 진지한 검토가 이루어진 것은 1930년대 후반부터이다. 1930년대 후반은 추상미술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추상화로 치닫는 현대미술의 향방에 대한 논의들이 진행되었던 시기이다.

1939년 정현웅(鄭玄雄)은 「현대미술이야기 1」과 「현대미술이야기 2: 현대미술의 전주곡 인상주의 운동」(『여성』, 1939. 6-7) 에서 인상주의의 역사와 색채분할기법 등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면서 인상주의 화가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피사로(Camille Pissarro),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을 도판으로 소개하였다. 이 글에서 정현웅은 현대미술의 큰 특징이 사실적 재현 전통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자연의 해석, 즉 주관의 강조에 있다고 보고 그 첫 시발점으로 인상주의를 소개하였다. 그리고 1906년 야수파(Fauvism) 이후 30년간을 서구미술의 혁명의 시대이자 새로운 미의 기원을 세운 제2의 르네상스로 규정하였다.

이처럼 1930년대가 되면 인상주의가 추상화로 진행되는 현대미술의 선구라는 모더니즘론이 역사화 된 반면, 화가들의 작업은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추상미술 등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지호(吳之湖)김주경(金周經)은 인상주의를 이미 극복된 과거의 사조로서가 아니라 현대미술의 진정한 미로서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인상주의의 토착화에 기여한 작가로 평가된다.

오지호는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전위파 회화운동을 중심으로」(『동아일보』, 1940.4.18~28)에서 수없이 많은 사조로 변화해 추상에 이른 전위미술의 흐름을 기계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폭력에 경악한 일부 지식인의 정신착오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비판하였다. 그리고 예술의 기본형식은 불변하는데, 미술의 경우 자연재현을 기본으로 하는 구상적 표현형식이 시대를 초월하여 불변하는 예술형식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회화는 빛의 예술이다. 태양에서 난 예술이다.”라고 하였고, 청명한 기후를 가진 한국의 자연을 재현하는 데는 인상주의 양식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오지호와 김주경이 함께 출판한 『오지호 김주경 이인화집(吳之湖 金周經 二人畵集)』(1938)에 실린 오지호의 「임금원(林檎園)」(1937), 「도원풍경」(1937), 김주경의 「가을의 자화상」(1936), 「오지호」(1937) 같은 작품들은 직접 교외에 나가 자연의 빛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원색의 붓 터치로 포착해내고자 한 시도가 잘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대기의 효과나 유동적인 빛과 색채의 포착이라는 면에서 인상주의와 유사하다. 그러나 빛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망막에 비치는 순간적인 광선효과가 아니라 생명, 생의 환희의 표현으로 주관화, 본질화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인상주의를 현대미술이 거쳐 가는 사조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자연과 빛을 재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식언어로 파악했다. 빛의 표현 자체를 생명의 표현이고, 이것이 곧 회화의 본질이라고 해석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작업은 인상주의의 토착화라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서양화의 출발점: 한국의 인상주의」(김영나, 『근대미술연구』, 국립현대미술관, 2005)
「일본 인상주의 수용의 초기양상연구」(하야시 미치오, 『근대미술연구』, 국립현대미술관, 2005)
「한국 근대 서양화단의 인상주의적 화풍의 계보」(김희대, 『미술사연구』, 미술사연구회, 1993)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 전위파회화운동을 중심으로」(오지호, 『동아일보』, 1940, 4.18~28)
「현대미술이야기 2: 현대미술의 전주곡 인상주의 운동」(정현웅, 『여성』, 1939. 7)
「현대미술이야기 1」(정현웅, 『여성』, 1939.6)
「파리의 모델과 화가생활」(나혜석, 『삼천리』, 1932.3)
「현대예술의 대안에서: 회화에 표현된 ‘포스트임프레셔니즘’과 ‘큐비즘’」(김찬영, 『창조』8호, 1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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