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를 든 자화상 (부채를 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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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든 자화상/고희동
부채를 든 자화상/고희동
회화
작품
문화재
한국 근대기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이 그린 자화상.
이칭
이칭
자화상
국가등록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등록문화재(2012년 02월 16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209-00
정의
한국 근대기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이 그린 자화상.
개설

201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캔버스에 유채. 세로 61㎝, 가로 4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름날 상의를 풀어헤치고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화면 왼편 상단에 ‘1915. Ko. Hei Tong’이라는 영문 사인(sign)이 있다.

내용

1915년 여름에 자신의 집 서재에서 모시 적삼의 상의를 풀어헤치고 둥근 선면의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쫒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전체적으로 밝고 투명한 색채가 사용되었으며 흰색 모시 상의의 그림자와 얼굴의 음영이 푸른 색조로 처리되어 있어 인상주의 화풍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나타낸다. 동시에 인체묘사에서는 형태의 윤곽을 중시하고 있어 우리나라 초창기 미술가들이 일본 유학을 통해 영향 받은 절충적 인상주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고희동은 1903년에 졸업한 한성법어학교에서 외국 교과서의 서양식 삽화 등을 통해 처음 서양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정부 관료로 근무하며 취미로 전통 수묵화를 익혔다. 1909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유화를 배우고 1915년에 귀국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다.

부채를 든 자신의 모습과 배경의 양서가 꽂힌 책장을 통해 전통적 사대부의 여유로움과 근대적 지식인의 자의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또한 화면 왼편 상단의 영문 사인은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선각자로서의 자기인식을 나타낸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작품으로 인상주의와 사실주의가 절충된 서양화 도입기의 전형적인 화풍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근대 초기 미술가의 자기인식을 드러낸 초상화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한국근대미술걸작전 : 근대를 묻다』(국립현대미술관, 2008)
『근대문화유산 : 회화분야 목록화 조사보고서』(문화재청·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7)
『한국미술 100년』1(국립현대미술관 기획·김윤수 외 57인 지음, 한길사, 2006)
『근대한국미술사의 연구』(이구열, 미진사, 1994)
『한국근대회화선집』양화1 나혜석/이종우 외(이구열 책임편집, 금성출판사, 1990)
국립현대미술관(www.mmca.go.kr)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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