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캔버스에 유채. 세로 61㎝, 가로 4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름날 상의를 풀어헤치고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화면 왼편 상단에 ‘1915. Ko. Hei Tong’이라는 영문 사인(sign)이 있다.
1915년 여름에 자신의 집 서재에서 모시 적삼의 상의를 풀어헤치고 둥근 선면의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쫒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전체적으로 밝고 투명한 색채가 사용되었으며 흰색 모시 상의의 그림자와 얼굴의 음영이 푸른 색조로 처리되어 있어 인상주의 화풍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나타낸다. 동시에 인체묘사에서는 형태의 윤곽을 중시하고 있어 우리나라 초창기 미술가들이 일본 유학을 통해 영향 받은 절충적 인상주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고희동은 1903년에 졸업한 한성법어학교에서 외국 교과서의 서양식 삽화 등을 통해 처음 서양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정부 관료로 근무하며 취미로 전통 수묵화를 익혔다. 1909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유화를 배우고 1915년에 귀국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다.
부채를 든 자신의 모습과 배경의 양서가 꽂힌 책장을 통해 전통적 사대부의 여유로움과 근대적 지식인의 자의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또한 화면 왼편 상단의 영문 사인은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선각자로서의 자기인식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의 작품으로 인상주의와 사실주의가 절충된 서양화 도입기의 전형적인 화풍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근대 초기 미술가의 자기인식을 드러낸 초상화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