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의 ‘자화상’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화면 가득 여성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이다. 짙은 색의 배경과 옷, 그리고 검은 머리색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얼굴과 목, 손 부분만 밝은 색으로 강조되어 어두운 배경과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우울하고 쓸쓸한 표정이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목구비는 큰 눈에 높은 코를 가진, 강하고 과장된 윤곽선의 서구적인 외모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서구적인 여성의 마스크로 인해 학계에서는 나혜석의 ‘자화상’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러나 본인 여부를 떠나 작가의 심리상태를 잘 드러낸 초상화로 볼 수 있다. 체념한 듯한 표정과 굳은 시선은 화면의 명암 대조와 더불어 작가의 심리와 정서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이 제작된 연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1920년대 말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 약 1년 8개월간 여러 나라를 둘러보면서, 당시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새로운 미술사조를 접하고 받은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파리 체류 당시 나혜석은 강렬한 붓놀림과 자유로운 색채 구사의 야수파 화풍에 공감하였는데, 이는 사실재현적인 인체묘사에서 벗어나 대상을 단순화 · 평면화하고 활달한 붓질이 특징인 이 작품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나혜석은 1913년 일본 도쿄의 여자미술학교(女子美術學校)로 유학을 떠나 1918년에 졸업한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다. 그녀는 고희동, 김관호, 김찬영 등 1세대 서양화가들이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을 그만두거나 동양화로 전향한 것과는 달리 귀국 후에도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의 선각자적인 자의식이 표현주의적 화풍과 함께 잘 드러난 초상화로 역사적 의미와 미술사적 가치가 큰 작품이다.